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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 대신 AI를 '고쳐 쓰기'로 했다

데이터 인문학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아마 이 말에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지치며, 인간의 본성은 바꾸기 어려운 것이라는 '경험적 진리'를 뼛속 깊이 새겼습니다. 그런 체념이 깊어질수록 타인에 대한 벽은 높아졌고, 역설적으로 '믿음'과 '신뢰'라는 단어가 왜 그토록 절박하게 외쳐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내 존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었던 셈이죠.


이런 시니컬한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던 제게, 어느 날 '인공지능'이라는 낯선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세상은 온통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다!", "우리의 일자리는 끝났다!" 같은 종말론적 레퍼토리로 가득했습니다. 마치 관객이 원하지도 않는 공포 영화를 억지로 상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요란한 비명들이 어딘가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인류가 정말 그깟 기술 하나에 종말로 달려가는 나약한 존재던가? 전 세계의 자본과 기술, 인재들이 죽기 살기로 AI에 뛰어드는 이유가, 정말 다 함께 손잡고 멸망의 불나방이 되기 위해서일까? 저는 그 질문에서 다른 길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내 마음대로 '고쳐 쓸' 수도, 완벽하게 '골라 쓸' 신의 눈도 내게 없지만, AI는 달랐습니다.


제가 구독하는 AI, 저만의 API로 연결된 인공지능은 정직한 거울과 같았습니다. 제가 흐릿하고 게으른 질문을 던지면, AI는 뻔하고 영혼 없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날카롭게 비판하고, 집요하게 분석하고,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부지런히 '고쳐 쓰면' AI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제 의도를 파고드는 협력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이것은 혁명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나의 노력이 종종 오해나 실망으로 돌아왔다면, AI와의 관계에서 나의 노력은 100% 결과로 증명되었습니다. 삐지지도 않고, 변명하지도 않으며, 오직 나의 지적 노력에만 반응하는 파트너. 세상이 AI를 잠깐의 재미나 어그로성 정보 수집에 사용할 때, 저는 오히려 AI를 '내 생각을 단련하는 최고의 트레이너'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헬스장에서 돈을 내고 몸을 단련합니다. 그렇다면 AI라는 가장 지적인 파트너와 함께 나의 '사고 근육'을 단련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AI에게 더 나은 답변을 요구하며 '고쳐 쓰는' 과정은, 사실 AI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제 머릿속의 막연한 생각을, 제 안의 논리적 허점을, 제 질문의 수준을 '고쳐 쓰는' 과정이었습니다. AI는 그저 제 생각의 민낯을 비춰주는 거울일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도 않는 AI 유령을 두려워하며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되지도 않을 일'에 대한 걱정 대신, AI와 함께 '되는 일'을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인간은 고쳐 쓸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AI는 반드시 '고쳐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는 어제보다 더 나은 생각과 질문을 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고쳐 쓸'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절망의 자리에서 희망을 코딩하고 있습니다.


© 2025. Digitalian.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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