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엄마
미안함이 고마움으로 바뀔 수 있다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다. 엄마는 나를 석현이와 비교하는 일이 많았다.
"석현이는 집에 오면 숙제부터 하고 논다던데 너는 왜 놀기부터 하니."
"석현이는 엄마일도 돕고, 동생도 잘 돌본다더라."
사사건건 석현이를 찾았다. 석현이와 나는 제법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하도 석현이 이름을 자주 언급하니 친구에 대한 미움이 생길 때가 있을 정도였다.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이야 말해 무엇할까. 결국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으아~~~. 그러면 석현이 데리고 살아~~~"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버렸다. 당황한 엄마는 나를 다그쳐보려 했지만 당시의 나는 물러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마구 흔들어 논 콜라의 뚜껑을 열어버린 것처럼 속에 쌓인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에 한 동안은 소리를 질러댈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이 꽤나 길었기에 엄마의 표정도 점점 변해갔다.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어 보이던 표정에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미안한 표정이 되어갔다. 그렇게 마음 것 소리를 지른 후에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
"알았어. 이제 비교 안 할게. 엄마는 네가 그렇게 속상한지 몰랐어. 미안해."
당시 엄마는 아주 이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이후에는 석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거의 없었다. 엄마는 그만큼 절제력이 있었고, 이성적인 분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도대체 왜 그렇게 비교를 했었던 걸까?
돌이켜보면 그때는 너무 여유가 없었다. 농사일은 아버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늘 엄마의 손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도 살림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그나마 당시에는 분가를 했기 때문에 시집살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조금은 덜어졌다는 게 다행이었지만 논과 밭이 전부 본가에 있었기 때문에 매일 같이 시부모님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다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엄마는 늘 내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때 아들을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 엄마의 삶은 버텨내기 급급했었기 때문에 아들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 아들은 큰 문제없이 자라줬지만 그렇기에 더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
그 미안한 마음이 엄마를 초조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불안했다. 공부를 안 하고 컴퓨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밖에서 놀다가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들이 엄마를 지배했다.
아주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서 밖에서 놀기를 좋아했고, 무료함을 견디기 어려워해서 컴퓨터 게임을 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평범함에서 벗어나는 사고를 친 일은 없었다. 부모 속을 썩이는 아들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엄마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있었고, 엄마의 말을 듣지 않으니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때 우리가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기보다 고마운 마음을 우선했다면 어땠을까?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속 썩이지 않는 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아들을 사랑하는 엄마에게 감사를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생각해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 때에는 고마운 마음도 함께 자리를 잡고 있을 때가 많았던 듯하다.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줘서 감사한 마음. 그런데 미안한 마음은 왠지 모르게 사람을 위축시킬 때가 많다. 미안하니까 자꾸 면목이 없어지는 거다. 하지만 고마운 마음은 다를 수 있다. 고마우니까 더 표현하고 싶고, 더 사랑하고 싶어 진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마음을 더 우선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지이다.
이제 나는 고마움을 먼저 생각하려고 한다. 못난 아들이어서 미안한 마음보다 좋은 부모를 만난 감사함을 더 크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엄마도 그렇다. 살피지 못한 미안함 보다 잘 커준 아들에 대한 고마움이 엄마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든다. 서로에 대한 미안함을 가진 채 마주 보는 사이는 어딘지 모르게 민망하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서로를 향한 고마움을 가진 채 만나는 관계는 평화롭고 풍성했다.
어떤 이유로 어떤 사람을 만나도 미안함보다 고마움을 먼저 생각한다면 더 풍성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