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이유
당신의 일상이 조금 더 경쾌해지기를
감사하게도 나는 산을 곁에 두고 살고 있다.
수리산 자락이 길게 뻗어 나온 끝 부분에 위치한 작은 동산. 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다. 많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적게는 한 달에 한번 정도를 오르는데 등산이라기보다 산책에 가까운 느낌이다.
부담이 되지 않는 산이라 해도 나가기 전에는 늘 게을러 지곤 한다. 결국 나가고 나면 이내 기분이 좋아지지만 단 번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산책을 하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그럴듯한 까닭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녹음을 한참 바라보며 감상에 젖는 사람도 아니고, 스치는 바람의 상쾌함을 오래 간직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산에 오르면 환기가 되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바로 이 점이 나를 산으로 이끌었다.
나는 본래 집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기도 하고, 가벼운 운동과 간단한 요리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빈둥거리는 시간이 제일 많다. 나에게는 익숙하고 만족스러운 삶의 패턴이지만 이따금씩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 답답함은 외로움 때문일 수도 있고,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래 집안의 공기가 산의 공기에 비해 탁한 것이 근본적인 이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산책을 나설 때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 답답함이 가시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탁한 공기에 짓눌린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꽤 있었던듯하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기만 할 뿐 의견이 좁혀지지는 않는 회의시간, 가벼운 대화로 시작했으나 언젠지도 모르게 미소를 잃어버리고 무거운 말을 반복하게 되는 순간들은 꽉 막힌 공간 안에 탁한 공기를 들이쉬는 답답함을 느끼게 만든다. 바로 산책을 필요로 하는 순간들이다.
이런 경우에는 공기의 무거움을 혼자서 견디는 게 아니기에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환기가 필요하다고 느껴도 창문조차 열 수 없는 상황. 누구라도 숨이 막혀올 것이다. 누구나 환기를 원하지만 누구도 나설 수 없는 상황이 예민하고 짜증스러운 반응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번은 무거운 공기를 뚫고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 적이 있었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생리현상이라는 걸 알지만 당사자인 나는 회의서류로라도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놀랍게도 그 순간 창문이 열렸고, 상쾌한 바람을 맞는 기분을 느끼게 됐다. 갑갑했던 분위기가 풀어지고 “밥 먹고 합시다.”라는 말이 나오게 됐기 때문이다.
집 안에 머물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삶은 늘 가볍고 경쾌할 수만은 없다. 때로는 무겁고 탁하며 숨 막히는 순간들이 찾아오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만약 그 무거운 순간이 잠깐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 지속된다면 어떨까? 어쩌면 우리는 무거움을 견디는데 익숙해져서 삶이 본래 경쾌하고 가벼울 수 있다는 걸 잊은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책을 포기함으로 인해 자신이 집안에 머물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탁하고 무거운 공기가 마음을 짓누를 때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가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면, 꽉 막힌듯한 시간이 지속될 때 가벼운 유머로 분위기를 바꾸어 낼 수 있다면, 애써 무리수를 두지 않더라도 “밥 먹고 할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다면, 삶이란 본래 경쾌한 것임을 기억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일상이 조금 더 상쾌해지기 위해서는 종종 산책에 나설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