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 때문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
제대 후 복학을 해 학교에 다니던 때의 일이다.
과 사무실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 한 통이 왔고, 나는 조금 거리를 두고 전화를 받았다. 며칠 전 CMA계좌개설을 권유했던 증권사의 전화였다.
군 생활의 어려움 중 하나는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갇혀있다는 느낌이 시간을 더 지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얼마나 지루했던지 경제신문을 읽을 정도였다. 주식, 펀드, 복리의 마법 등 생각만으로도 부자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나 가난한 군인은 현실적으로 생각을 했어야 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천천히 미리 알아가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CMA통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제대를 한 후 경제와 투자에 관한 관심은 급격히 사라졌다. 대학생활을 즐기기에도 부족했고, 30만 원의 용돈이 빨리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CMA통장을 만들라는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를 끊지 않고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CMA계좌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이제라도 다시 투자에 관심을 가지려고 했었는지 모르겠다. 관심은 있었지만 그다지 큰 관심은 아니었기에 "생각해 볼 테니 나중에 다시 전화 주세요."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CMA계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했을 리는 없었다. 투자에 대한 관심은 역시 대학생활의 즐거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내고 있을 때 다시 전화가 왔다. 나는 그제야 '아 맞다.' 하며 생각이 났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미 결론은 나있었지만 나는 전화를 끊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로 인한 의기소침이었을까? 잊지 않고 다시 전화를 준 사람의 수고로움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는 일이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과제였었다.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말을 끊을 타이밍도 잡지 못하고, 그저 "네"라는 대답만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고객님. 그냥 안 하실 거면 안 하신다고 말씀하세요."
"거절을 못하셔서 그러는 거면 고객님도 힘들고, 저도 힘들잖아요."
정곡을 찔린 나는 "네"라는 힘없는 대답을 반복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어두워진 나의 표정을 금방 알아차렸다.
"무슨 전환데 그래?"
"증권사에서 통장 만들라고 온 전화야."
"아니 무슨 그런 전화를 그렇게 오래 하고 있어?"
아무 일도 아닌 듯 이내 다른 이야기로 화제가 전환되었지만 나의 마음은 그러질 못했다. 한 동안 마음이 힘들었고, 며칠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런 전화하나 쉽게 끊지 못하는 나를 들켜버린 게 창피했고, 왜 분명하게 나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할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때는 답을 알지 못했고 여전히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지만 마음을 어느 정도 개운하게 만들어준 대답은 찾았었다. '애매한 마음 때문이구나.'라는 깨달음이었다.
CMA통장을 만들고 싶은지 아니면 신경 쓰고 싶지 않은지 모르겠는 애매함. 그 애매함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애매함은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찾아낸 내 마음속 깊은 애매함은 내 마음을 우선에 둘지 타인의 마음을 우선할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거절을 못하는 나의 마음은 늘 타인의 마음을 우선하는 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 사람이 실망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나의 입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그런데 타인의 마음을 우선하는 게 뭐가 문제일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마음을 우선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은가?
문제는 내가 거절하고 싶은 마음을 숨긴 채 타인의 마음을 우선에 두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기만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했고, 상대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다. 내 마음대로도 하고 싶었고, 상대방의 미움을 받고 싶지도 않아 했었다. 그 두 마음 사이에서 나는 늘 애매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다행히도 내 마음을 우선에 두기로 결정했다. 내 마음도 타인의 마음도 알기 어려웠지만 내 마음을 아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두 마음 다 다루기가 어려웠지만 타인의 마음을 다루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늘 나의 마음을 우선에 두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타인의 마음을 우선할 때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제 타인의 마음을 우선에 둘 때에는 기꺼이 나를 내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애매한 태도로 불편함을 감수하며 억지로 맞추지는 않으려고 한다.
또한 내 마음을 아주 잘 알아주기로 마음먹었다. 평소에 내 마음을 잘 알아주어야 기꺼이 나를 내어줄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애매하지 않고 온전히 분명한 마음이 어디 있으랴 만은 개운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개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분명함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