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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05. 2024

할아버지의 썰매

아끼는 마음은 사람을 존엄하게 만들어 줍니다.

할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으신 분이었다.


손자를 위해 방패연, 대나무 물총, 잠자리 채 등을 만들어 주셨는데 모양새나 기능면에서 늘 우수했다. 예컨대 방패연을 만드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대나무를 직접 깎아 일정한 크기의 대를 만들기 위해 살펴보고 또 살펴보셨다. 창호지에 구멍을 내는 과정도 경이로웠는데 컴퍼스도 없이 정확한 원을 만드셨다. 찹쌀 풀을 쑤어서 대나무 대에 창호지를 붙이고, 실을 묶어 균형을 맞추셨다. 그런 섬세한 과정들을 보게 될 때는 할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방패연은 어김없이 높이 날았다. 사실 동네에 방패연을 가진 아이는 나뿐이었는데 그만큼 방패연은 손이 많이 갔기 때문이었다. 어쩌다가 가오리연이 아닌 방패연이 나타나면 가오리연만도 못한 경우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만드실 때는 늘 기대를 하곤 했었다.      


어느 날 한 번은 할아버지가 사포질을 하고 계신 모습을 보게 됐다. 일정한 크기의 나무판들을 반들반들하게 만들고 계셨다.      


“할아버지, 뭐 만들어?”     


할아버지는 말없이 웃으셨다. 미리 알기보다 늦게 아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거기, 철사 좀 다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나에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철사 끝을 날카롭게 만들어 나무에 박아 넣으셨다. 나무에 못이 아닌 철사를 박아 넣다니! 역시 우리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철사를 구부려 반대쪽에도 똑같이 박아 넣으셨을 때 나는 작품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바로 썰매였다.


당시에 동네에서 경지정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흙을 파내기도 하고, 덮기도 하며 수로를 만드는 작업 등을 했었는데 겨울에는 작업이 많지 않았다. 땅이 꽝꽝 얼어버렸기 때문이다. 공사 현장에는 큰 구덩이가 하나 있었다. 깊지는 않았지만 제법 넓은 땅에 물이 고여 있었다. 매서운 추위에 물이 얼어붙었고, 동네 아이들은 모두 얼음판 위로 모였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몸만 가서 놀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장비들을 가져왔다. 대나무를 쪼개 스케이트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비료 포대를 가져와 끌어보기도 했다. 아이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장비들은 션찮았다. 상상과 실제는 차이가 많이 났다. 눈 위에서는 씽씽 달렸던 비료 포대가 얼음 위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뭔가 더 신나고 재밌게 만들어 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 마음을 알아보신 할아버지는 손자를 위해 썰매를 준비하셨다.


썰매는 빈티지 스타일이었다. 큰 나무판 대신 버려진 나무들을 같은 크기로 잘라 합쳐 만든 썰매였다. 손자가 가시에 찔리기라도 할까 봐 정성스럽게 사포질을 해 더 기품이 있었다. 심지어 썰매스틱마저도 멋졌다. 오래된 나무의 부드러움과 사랑의 사포질이 만나 최적의 그립 감을 제공했다. 썰매와 스틱은 색감부터 스타일까지 멋진 한 쌍이었다.


할아버지의 썰매를 타고 얼음판을 달리는 기분은 경운기들 사이에서 스포츠카를 타는 기분과 흡사했다. 더 신이 났던 건 스포츠카 등장 후 나타나는 여러 자동차들이 스포츠카의 성능을 따라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할아버지의 썰매는 그 어떤 웅장한 썰매들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원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틀 수 있었고, 몸을 틀어 빠르게 멈출 수도 있었다. 크고 높은 썰매들은 넘어지기도 쉬웠지만, 낮고 알맞은 크기의 썰매는 쉽게 넘어지지도 않았다.


나는 부러울 게 없었다. 하루하루 새롭게 등장하는 어떤 장비도 할아버지의 썰매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썰매 시합을 하면 언제나 일등이었다. 나는 그만큼 자신감도 높아지고, 기세도 등등 해졌다. 친구들은 모두 내 썰매를 타보고 싶어 했지만 나는 여간해선 썰매를 내어주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에 나는 아주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었던 듯하다. 좋은 썰매를 가졌다고 해서 내가 멋진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걸 몰랐다.      


꽤 오랫동안, 그러니까 20대 중후반이 될 때까지 나는 멋진 썰매를 가지고 있어야 나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남들보다 잘하고, 더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중요한 건 썰매가 아니었다. 나에게 남아있는 기억은 썰매를 타던 기분이 아니라 손자를 위해 썰매를 만드신 할아버지의 마음이었다.       


할아버지는 썰매를 만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방패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살펴보시던 그 정성을 썰매에도 쏟으셨을 테다. 손자가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동시에 다치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렇기에 그토록 오랫동안 세심히 사포질을 하셨던 것이다.     


어린 손자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었다. 그저 할아버지의 손에서 탄생하는 작품들에 대한 기대뿐이었다. 만약 내가 그때 썰매보다 할아버지의 마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


아끼는 마음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면 뽐내는 삶을 살지는 않았을 듯하다. 스포츠카 급의 썰매를 타며 으스대는 마음도 없었을 테다. 왜냐하면 그때 나와 같이 썰매를 타던 친구들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건 마음을 쓰는 일이다. 더 신나고 재밌게 놀고 싶은 손자의 마음을 알아주는 할아버지의 마음처럼 나도 할아버지의 썰매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나는 뽐내는 삶보다 헤아리는 삶을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할아버지의 썰매를 어디에 뒀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할아버지의 마음은 언제든 되살아난다. 썰매를 탐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으니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내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나는 비로소 썰매가 아니라 손자를 아끼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어린 나를 존엄하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아직 소유에서 존재로 넘어가는 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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