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평소에 어머니와는 자주 통화를 했지만 아버지와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전화를 받을 땐 약간의 어색함을 느끼곤 했다. 늘 그래왔듯이 아버지가 나의 안부를 물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날은 왠지 모를 무게감이 느껴졌다.
“아들아. 아버지가 너를 힘들게 한 일이 있다면 아버지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해 다오.”
“미안하다. 아들아.” 아버지가 사과를 하셨다.
“아니, 뭔 소리 셔.” 나는 민망한 나머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평소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아들에게 자세히 들려주곤 하셨는데 그날도 그랬다. 아버지는 최근 심리학을 전공하신 사모님이 주관하시는 교회모임에 참석하셨고 했다. 종교적인 색채보다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아들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초등학교 일 학년 시절 아버지는 첫 차를 사셨다. 파란색 1톤 트럭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태우고 차를 몰아 둑길을 달리셨는데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달렸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기분에 취했던 나는 자랑이 하고 싶어졌다. 아버지의 멋진 트럭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었다.
다음 날 나는 등굣길에 차를 태워달라고 졸랐다. “아빠, 일 나가야 하니 걸어가라.” 아버지가 말씀하셨지만 나는 학교에 가지 않고 버텼다. 어느덧 시간은 아홉 시를 훌쩍 넘겼고, 버티던 나를 외면하던 아버지가 시계를 보셨다. “너, 지금 몇 신데 학교를 안가.” 아버지는 단단히 화가 나셨고, 파리채를 거꾸로 드셨다. 그 파리채가 엉덩이에 닿자마자 나는 항복을 선언했다. “아빠, 잘못했어요. 학교 갈게요.”라고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욱하는 성격이 있으셨는데 이미 화가 단단히 올라온 상태였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가로막고, 할머니가 손자를 감싸 안고 나서야 매질이 멈췄다. 나에게는 그 옛날의 기억이 생생했고, 그 사건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억울함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 이 한 참 지나서도 나는 잊어먹을 만하면 그 얘기를 꺼냈다. “아니, 그 어린애가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그렇게 때려?” 아버지의 욱하는 성질에 대한 비난과 나의 억울함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셨다. 민망하기도 하고 짜증이 났을 수도 있는데 막아서질 않으셨다. 그런데도 아들은 뭐가 그렇게 억울했던 것일까?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이 궁금했고, 아들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내 놓으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 들으신 사모님이 물으셨다. “아들에게 사과를 하신 적이 있나요?”
“아직 그런 적은 없습니다.”
“아마도 아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가 봐요.”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책상에 앉아 종이와 볼펜을 꺼내셨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한 참을 앉아 있었지만 결국은 편지를 쓰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안타까워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려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으셨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시건방진 아들이었다. 아버지의 애씀을 기반으로 대학도 나오고 해외연수도 다녀왔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모든 선택을 존중하고 지원해 주셨다. 그런데도 아버지 앞에서 건방진 태도를 자주 보였다. 아버지가 나에게 상처를 줬던 만큼 아니 그 이상 아버지에게 상처를 줬다.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욱하기라도 하면 “또 욱하네.”라며 빈정거렸고, 아버지의 치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의 상처를 끄집어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런 불편한 지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마음을 먼저 궁금해하셨다. 잘나고 똑똑한 아들을 억누르려고 하거나 건방지다고 여기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만큼 아버지는 그릇이 크신 분이었다. 오랜 시간 아버지는 아들을 누르기보다 자신을 눌러 오셨던 반면, 아들은 아버지의 기분을 생각하기보다 자기감정을 우선 해왔었다.
똑똑하고 잘난 줄 알았던 아들은 아버지의 한 없이 넓은 품을 느꼈다. 많이 배우고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일보다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보듬는 사랑이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들려주기 위해 자기의 과거를 수없이 곱씹으셨다. 편지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셨다. 그렇게 아들의 마음을 수없이 헤아려본 아버지의 사과는 짧았지만 울림이 있었다.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위로했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고, 일어서게 만들었다. 사랑을 담은 말 한마디는 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