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자마자 가만히 책상에 엎드린 채 멍하니

2025.04.29(화) 10:09

by 디그레시움


저는 매일 글을 쓰기 전 그날의 기분에 맞춰

2025년 2월에 3주 동안 다녀온 홋카이도 혼자여행

사진을 한 장씩 첨부합니다(이 또한 연재예정이에요)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의미 있는 여행이거든요.


한 2,000장 되는데 그거 다 쓰면.. 연재는 끝납니다.

(겹치는 거도 많은데.. 흑)


그러나, 그 사이에 홋카이도 혼자여행을 다시 다녀오게된다면? 리셋!


오늘의 사진 [2025.02.10(월) 19:33]

겨울의 오타루는 처음이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처음은 아니지만,
나의 첫겨울 삿포로, 오타루는 내 기억 속에서
송두리 째 사라질 정도로 최악의 기억이기에

다행히 빛축제 기간에 맞춰
나는 눈 가득 쌓인 운하를 따라 아기자기한
얼음조각들과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당시는 동행과 3박 4일 여행 후
귀국 할 예정이었기에

그저 내 마음의 힘듦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동행에게 하소연을 하며,

이 어여쁜 곳을 걸어가면서도
순간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어찌할 줄 몰라서

동행도 당황하고 나 또한 당황하던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잔잔하고 평화로웠지만
마음은 아직 차가운 눈폭풍이 불고 있어

나도 내 마음을 어찌 다뤄야 할지 몰랐던

그런 혼란스러운 나와 달리
너무 아늑하고 평온했던 그런 예쁜 오타루




오늘도 어젯밤 피로 속에서 잠에 푹 들어

개운하게 아침에 일어났다.


그래서 기분도 좋고 나쁨으로 정의하기 힘든

맑고 깨끗하고 자신 있게!

(갑자기 광고멘트가 떠오르네)

그런 기분이다.


비록 꿈을 찐~하게 꾸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언니가 꿈에 나왔기에

그 언니와 신나게 노는 꿈이었기에


언니 한 밤중에 내 꿈에 다녀가느라

아침에 피곤하진 않았을까? 의문을 품으며


잠에서 일어났다.



홋카이도 혼여 3주를 다녀오고 나는

나만의 아침루틴을 만들었다.


눈 뜨자마자 씻고 양치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곱게 묶고

커피를 데우면서

아침약을 먹고

영양제를 먹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마샬스피커로 노래를 틀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해야 할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책상에 앉고 노트북을 펼치기는 했는데

마샬스피커로 노래를 틀었는데


그 노래의 소리가 거실의 공간을 가득 채우며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마법을 휘리릭 걸었다.



그래서 순간 노트북은 바탕화면만 띄워놓은 채

책상에 엎드려서 멍~하니 노래감상을 했다.


문득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와 감정과

가사와 선율이 더 크게 와닿았다.


그리고 그 노래가 좋아 계속해서 반복하며 들었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20분을 엎드려 있다가

다시 커피를 가져오고, 약을 먹고


노트북에서 해야 할 페이지를 열어보기 시작한다.




어제는 먹어야 할 약이 다 떨어져서 병원에 다녀왔다.

나를 거의 4년째 보는 의사 선생님


워낙 노련하셔서

내가 들어오는 모습

내가 말하는 말투

내 눈빛


이 것만 보고도 나의 상태를 다 파악하신다.

상담위주의 병원이 아니라, 약 처방 위주의 병원이기에

빠르게 나는 나의 상태를 호로록 말했다.


나는 병원에 가는 게 유일한 외출일정이었지만

새로 산 테니스치마를 입고,

예쁜 분홍색 반팔니트도 입었다.


아직 취준생인 나에겐 정말 특별하고 간만의 외출이고

그냥 나를 예쁘게 꾸미고 싶었기 때문이다.


화장도 하고 머리도 곱게 말리고

요새 제일 좋아하는 딥티크 오로즈 오드퍼퓸도 뿌렸다.


데이트를 가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내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리고 선생님께 예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사실 난 오랜 기간 병원에 다니면서 안다.


내가 정말 상태가 안 좋을 때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약을 타러 갈 때 내 모습.


세수만 겨우 한 채 모자를 푹 쓰고

운동복 차림으로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갔었다.


의사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 보는 것 뿐인데

그래서 그냥 적당히 외출차림으로 가도 되는데


그냥 나에게 평범한 외출복을 입히는 것조차 싫고

머리를 단정하게 하는 것조차 싫어서


그냥 그 모든 게 다 나에겐 부담이고 스트레스라서

그냥 그렇게 슬리퍼를 질질 끌고 들어가


최대한 짧게 내 상태를 말하고 간단히 목례를 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생각을 하며

원무과에서 기다리다 약을 타고 빠르게 병원을 나섰다.



하지만 점점 상태가 괜찮아질수록

나를 한 달에 한번 진찰해 주시는 선생님이 감사했고

70세가 훌쩍 넘었지만 오직 사명감으로 그 많은 아픈 사람들을 쉴 새 없이 진료하는 그분에게 고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엔 더욱 특별했던 게(?)


내가... 즉흥으로 홋카이도 혼자여행을 3주나 연장하며

3주 동안 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혼날 것을

예상하고.. 허허

(사실 아주 위험한 행동입니다. 이러시면 큰일 나요)


더욱 곱고 어여쁘게 꾸미고


'안녕하세요!!' 하고 힘차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제가 그.. 한 달 동안 약을 안 먹었죠? 히히”

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눈치를 살폈다.


선생님은 진료차트를 후루루룩 읽으며

“그래~ 그랬네~ 근데 안 먹어도 괜찮았나 보네?”

하셨다.


나는 쫑알쫑알 대며,

내가 이러이러해서 약을 먹지 못한 상태가 되었고

생각보다 그래도 살만했고, 예전에 탔던 약을 꾸준히

잘 먹었고, 잠도 잘 자고 괜찮은 편이다.

그리고 요새 취업준비도 잘하고 있고, 면접을 앞두고 있어 아무래도 불안 혹은 공황이 살짝 오려하긴 한다.


이렇게 상세히 말씀드렸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선생님은 옅은 미소를 띠며

내 얼굴과 말투 그리고 눈빛을 집중해서 살피셨다.


그러고 한마디 하셨다.


많이 좋아졌네~


그래서 내가 순간 잉? 하고 다시 여쭤보였다.


“선생님은 제가 괜찮아진 것처럼 보이세요?

약을 무려 한 달이나 마음대로 안 먹었는데요;; “


응~ 건강해 보여


기분이 좋아진 나는

괜히 TMI를 남발하며


사실 약을 한 달 동안 먹지 않아 혼날까 봐

이리 더 예쁘게 꾸미고 왔노라 고해성사도 했다. 하하




사실 내가 약을 오래 먹으면서 겪은 부작용은

몸이 점점 불어났다는 것이다... 흑


난 고등학생 때부터 무조건 살이 찔 수밖에 없다는

직딩과정을 겪으면서도 몸무게가 항상 같았다.


사실 좀 골격이 있는 편인데; 상체가 가늘고

하체뚱뚱~체질이라 사람들은 내 몸무게 보다

훨씬 마르고 날씬한 사람이라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기성복을 고를 때도

상의는 S 하의는 M을 고르면 웬만한 옷은 다 맞았고

(물론 요새 유행하는 빼빼 마른 어린 아이들이 입는

그런 옷 44사이즈 같은 옷 말구..)


평범한 55 사이즈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나...


이 약은 나에게 불안할 때 음식을 찾는 습관과

도저히 움직이고 싶지 않은 무기력을 선사했으며


달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엄청 싫어하는 내 입맛을

늘 배달음식을 찾고 싶게 바꿔버렸다.


그래서 평범 55 인간의 몸을 점점 불어나게 만들었고

그 또한 나에게 심각한 스트레스와 우울을 가져왔다.


평생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없는 내가

다이어트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내 몸이 망가져버려 꼴보기 싫어진 게

내가 갖고 있던 모든 옷들이 맞지 않는 게


난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그런데 그 몸이 요새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이어트 없이, 식단조절 생각 없이


그냥 이미 많이 축적된 지방이 굳이 음식을 안 먹어도

살아갈 수 있어서 그런 거일수도 있다. 허허


그래서 면접치마를 한 번 입었는데

너무 붙긴 하지만 들어가는 것이다.

허리는 살짝 여유로운 채


이 옷은 한창 내가 몸이 안 좋을 때는

허벅지에 걸려 올라가지도 않던


그런 완전 정핏의 H라인의 치마.



그때 나는 느꼈다.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때렸던 나의 멍.


점점 틈이 생겨 들어가는 옛 치마처럼
나 또한 나에게 틈을 허용하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해서
바삐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게 아닌,

순간의 틈과 정적을
점점 나에게 허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나에게 너그러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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