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4(일) 11:23
저는 매일 글을 쓰기 전 그날의 기분에 맞춰
2025년 2월에 3주 동안 다녀온 홋카이도 혼자여행
사진을 한 장씩 첨부합니다(이 또한 연재예정이에요)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의미 있는 여행이거든요.
한 2,000장 되는데 그거 다 쓰면.. 연재는 끝납니다.
(겹치는 거도 많은데.. 흑)
그러나, 그 사이에 홋카이도 혼자여행을 다시 다녀오게 된다면? 리셋!
오늘의 사진 [2025.02.13(목) 13:00]
3박 4일의 동행과 함께한 삿포로일정을 끝내고
나는 귀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계획에 어긋나게
살아본 적이 있었나?
아니 살면서 이렇게 내 마음대로
금전적, 시간적 제한을 두지 않고
행동해 본 적이 있었나?
그리고 그 생각 속 가장 크게 들었던 의문
나 이렇게 해도 되나?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그 느낌표를 가득 채운 채 나는
난생처음으로 해외여행에서
즉흥으로 일정을 연장해버리고
귀국행 비행기표를 날려버리고
혼자여행을 시작했다.
그 하루의 시작이었다.
2월 13일 목요일.
너무 복잡하고 시끄러운 시내를 벗어나고파
생각보다 자주 들리는 한국어를 피하고 싶어
나는 보통의 관광객들이 굳이 찾아가지 않는
삿포로의 한 공원에 도착했다.
눈이 정말 펑펑 내리고 있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눈이 펑펑펑 내리며
나를 반겨줬다.
너무 신이 나, 모든 언어가 들리지 않는 이공간이
너무 자유롭고 해방감을 느끼게 해서
나는 점점 콧노래를 부르다 결국 노래도 부르며
그렇게 일부러 눈 많이 쌓인 곳만 찾아다니며
아무도 밟지 않는 눈만 찾아다니며
처벅처벅 밟고 만지고
얼굴에 떨어지는 눈을 맞았다.
차갑고 포근했다.
바람이 없이 눈만 쏟아지니
정말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순식간에 날씨가 갰고 파란하늘이 보였다
새하얀 눈밭과 대비되는 파란 하늘
그리고 난생처음 보는 눈 덮인 자판기
그 조차 폭신폭신해보고 귀여워 보였던
그런 어느 오후,
눈 오던 삿포로에서의 나 혼자.
나는 직장인도 아닌데 괜히 어제 새벽에 잠이 들어
늦잠도 자고 일어났다. 하하
이게 참 심리적으로 빨간 날이라는 게
직장인이든 취준생이든 미묘하게
여유의 시간이 있음을 허용하는 표식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알지
이 빨간 날의 완연한 봄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는 것
나 같은 취준생, 심지어 면접을 앞두고 있는 나는
맑은 하늘을 방 안에서 구경만하며
그렇다고 면접준비에 완전히 집중도 못하고
괜히 딴짓도 곁들이며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밖에 나가 맘껏 빨간 날의 봄을 즐기고 싶은
몸과 마음을 애써 이성이 부여잡은 채
찝찝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면접일정이 예상보다 두배로 밀렸다.
그러니까 채용시험 필기합격 연락을 받은 지가 벌써
열흘이 다되어가는데, 거기서 일주일이 더 밀린 거다.
아마 징검다리 연휴, 대체연휴, 황금연휴 등등으로
면접을 봐줄 직원들이 휴가를 많이 냈겠지
일정상 계획적으로 진행하기엔 무리이기에
쭈우우욱~ 빨간 날 없는 주로 미뤄버린거겠지
그렇게 '갑'에 속하는 이들이
마음껏 누릴 빨간 날의 봄
'을'에 속하는 우리들은
그저 결론 나지 않는 불안한 미래와 걱정만 가득한
하루하루가 연장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예상보다 면접날짜가 미뤄졌길래
오? 하고 기뻤다가 마음이 더 조여 온 거겠지.
아 며칠이나 더 이 마음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거야
마치 책상 위엔 책, 아니 종이 하나 주어지지 않고
먼지하나 없이 깨끗하게 비워둔 뒤
하얀 벽을 향하도록 몸을 의자에 바짝 당긴 채
나를 꼿꼿하게 앉혀놓고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게 하는 기분이다.
그런 하루하루를 난 어떻게 또 견뎌내야 하나
좀 빨리 끝내고 싶은데, 그게 합이든 불이든
결론도 마무리 없는 하루하루를 또 어찌 보내야 하나
그래도 요새 내가 꽂힌 소소한 행복이 있다.
향기를 맡는 것
홋카이도 혼자여행을 다녀온 뒤
나의 감수성은 더 극대화되었고,
원래 예민했던 나의 오감은 더 예민해졌다.
덕분에 우걱우걱 먹어치우던 배달음식의 조미료맛도
아무거나 입어 내 몸을 더 못나게 하던 내 모습도
무취에 가깝던 나의 공간과 내 체취도
그저 고요함이 싫어 틀어놓던 아무 채널의 티비소리도
촉감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쓰던 꺼끌꺼끌한 수건도
모든 게 거슬려져 다 바꿔버렸다.
그중 하나가 바로 '향'이다.
후각이 정말 예민한 난 사실 모든 '향수'를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면 여자향수 특유의 그 달달하고 인공적인.
그게 참 나를 머리 아프게 하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내음과 허브향을 구현했다 한들
금세 톡 쏘는 알코올향 뒤 인위적인 냄새부터 느껴졌고
탑, 미들, 베이스 노트 따위의 섬세함조차
알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그냥 진짜의 향을 덮어버리는 가짜냄새
나에게 향수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 나에게 봄내음을 선사하는 향기가 왔다.
우연찮게 구매한, 온갖 비싼 명품향수들이 즐비한
향수의 세계에서 발견한 향수
자연스러운 만큼 금세 날아가버리지만
나는 그 날아가버리는 순간조차 즐겁다.
그 향을 처음부터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굳이 밖에서 봄의 풍경을 담지 않아도
봄 내음을 가득 맡지는 못해도
나는 그 봄 꽃 가득한 향을 맡으며
나만의 봄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그렇게 나의 완연한 빨간 날의 봄은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서, 심적으로는
3평짜리 고시원에 갇힌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나만의 빈 공간을 찾아
나만의 봄 향기를 채워 넣으며
나만의 봄을 상상해 보며
봄을 차곡차곡 담아
나도 양껏 누려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