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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ㅣㅁ Jul 16. 2024

고시, 마지막 다시 -3편-

못난이 첫째 일기: 나는 몇 인분의 삶을 살고 있을까?


호기롭게 고시를 다시 준비했고, 뜨거웠던 여름에서 귀가 얼얼하던 겨울을 지나 다시 또 여름이 된 지금. 다시는 보지 않을 마지막 고시를 치고, 마지막이 될, 되어야만 하는 무한의 기다림이 또 한번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이번엔 혼자가 아니기에 그럭저럭 버틸 만 하지만 기다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번 그랬지만 여태는 그래도 마음속 깊숙하게는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기에, 진짜로 마지막임이 분명했던 이번은 그동안과는 달랐다. 정말 마지막이어야 했다. 그래서 준비하는 자세도, 시험에 임하는 마음도 그리고 오늘의 기다림을 버텨내는 시간들도 다르게 느껴진다.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스쳐간 시간들이 새삼스럽게 와닿는다. 정신 차리고 보니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함께 웃고 떠들었던 친구들은 어느새 어엿한 가장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나만의 아지트라 자부하던 술집, 카페들은 낯선 간판들로 바뀌어있었다. 나의 시계는 아직 4년 전에 머물러있는데 나만 두고 세상이 저만치 가버린 것 같아 서운하다.

아주 잠시 웅크려 있었던 것 같은데 고개를 들어보니 나만 남겨져 있는 기분.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어렸을 땐 대학생이 되면, 그러니까 스무 살이 되면 열두 시가 땡 하고 치면 어른이 짠 하고 되는 줄만 알았다.


막상 스무 살이 되고 나니 변한 건 없었다. 여전히 엄마의 도움 없이는 아침잠을 이길 수 없었고, 방 좀 치워라, 일찍 일찍 다녀라 등 부모님의 애정 어린 잔소리도 여전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여행을 갈 수 있게 됐단 점. 어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화장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 정도.

주변을 둘러봐도 다 나만큼이나 어른 흉내를 내는 애 티를 벗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대체 어른은 언제쯤 되는 건가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 취업을 하고, 세금을 내고, 사회의 일 인분을 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취업과 동시에 완성형 어른이 된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 일정 수준의 포인트를 얻어야 한다면, 나이와 더불어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퀘스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된 동생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 동안 먼저 어른이 된 건 친구들뿐이 아니었다. 내가 학교생활을 안내해 줬던 새내기 후배들도 이미 사회에서 일 인분의 삶을 살고 있었고, 두 살 터울의 동생도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멋진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마다 정해진 인생의 타임테이블은 다르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나이 어린 후배들이 어엿한 사회구성원이 되어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모습을 보아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우리 모두의 시간은 각자의 속도로 다르게 흘러가니까. 나만의 페이스대로 나의 시간에 맞추어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뱃속에서 나온 혈육이 태어난 순서를 하나씩 뒤집어가는 모습을 볼 때는 기분이 좀 다른 것 같다. 동생이 너무 자랑스러운 한편, 부끄러움인지, 질투인지 부러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 가는 동생 눈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일지, 내가 한심해 보일까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너무 찌질하고 싫지만 자꾸만 그런 마음이 울멍진다.



형제자매에게 서로는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영원한 라이벌이라는 말이 있다. 출생순서에 따라 위계관계가 결정되는 동시에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 동등한 위치를 가진다는 이중적 성질 때문이다. 엄연한 위아래가 있어 가족 내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다르지만, 부모의 사랑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감사하게도 나와 내 동생은 성향부터 취향, 타고난 재능까지도 모두 정반대였다. 그래서 나보다 수학을 잘하는 동생을 시기질투하기보다는 같은 중학교를 다니며 언니동생이 각각 문과 이과에서 짱을 먹고 있다는 선생님들의 칭찬을 훈장처럼 여겼다.


각자의 재능을 살려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도 유치하지만, 자매가 나란히 잘 나가서 좋겠다며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주변 어른들의 말씀에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어서도 같은 나무에서 뻗어 난 두 가지가 다른 색의 꽃을 틔운 것처럼 각자가 잘하는 공부를 했다.



문제가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어디서부터 이 순서가 꼬였는지 모르겠다. 두 해의 출생 우위가 언제 뒤집혔는지 잘 모르겠지만, 언제부터 나의 속도는 느려지고 동생은 꾸준하게 아니 어쩌면 가속이 붙어 자꾸만 뻗어나갔다. 멋지게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동생을 보며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도 다시 이전의 속도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좋은 자극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격차가 벌어진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가족끼리 이런 걸 따지는 게 의미가 있냐고 할 수 있지만, 그리고 그게 맞는 말이지만, 뒤처진 첫째는 마음을 뒤덮은 초조함과 스멀스멀 올라오는 열등감에 자꾸만 불편해진다. 언니로서 앞장서서 이길 저길 먼저 걸어보고 동생을 안내해주고 싶은데. 자기 주변에 내 또래 사람들을 보며 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모르는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만 같은 동생을 볼 때면 자꾸만 내가 작아진다. 그리고 이런 짜치는 생각들이 내 설 자리를 더 갉아먹는다. 더 최악은 나를 가엽게 만드는 이런 마음들이 너무 싫어서 나를 자꾸만 작아지게 만드는 트리거가 돼 버린 동생이 불편해진다는 거다.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부모님한테도 자꾸만 서운해진다.

그리고 이 모든 유치하고 속좁은 마음이 자꾸만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화도 난다.



믿음직스러운 자랑스러운 맏딸이 못난이 첫째가 돼버린 것 같다.

나도 어서 빨리 더 멀리 가지를 뻗어 다시 꽃을 피우고 싶다.


시간 참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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