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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ㅣㅁ Aug 19. 2024

14. 거절은 아무리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고시생 카스트3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마 오랫동안 이에 관해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인턴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눈치가 정말 빠르다면 나의 이전 글이 '고시생 최하층의 난'이라는 점을 통해서도 눈치챘을 수 있다. 보통 성공한 난은 혁명이라 불리지만, 실패한 반란은 난에 그치므로.



면접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3명의 면접관은 모두 젊었고 굉장히 편안한 분위기에서 웃으며 대화했다.

형식적인 고시면접과 달리 정말 나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느낌을 받아 황송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흥미로운 사람이라고는 생각하는 듯 보였으나 딱 거기까지.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기에 어느 정도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모든 기회에는 최선을. 그런데 난 최선을 다했는가?

일단 주어진 기회는 최선을 다해서.


고시생활을 하며 얻은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다.

시험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차 시험을 붙어 2차 시험을 치르게 되는 경우, 올림픽이라는 말로 유야무야 해치워 버리는 경우들이 있다.

'어차피 이번 시험은 그냥 올림픽이니까 가볍게 보면 돼. 난 내년 합격을 목표로 한다!'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 고시계의 고인물로서 꼰대 같은 소리를 한마디 하자면, 저런 마음가짐으로 정말 내년에 합격하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그랬다.



우리 아빠가 습관처럼 내게 해주시는 말이 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과 비슷한 말이다.

요행은 이미 인간의 영역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한 자에게나 바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깨우쳐 준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

아니다.


아 물론,

아무런 준비 없이 면접을 본 건 아니었다.

당해 분야의 트렌드나 내가 맡을 업무에 대해 열심히 조사하고, 벼락치기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간의 내 경험들과의 관련성 등에 대해 고민하고 면접 후기 등을 열심히 찾아보며 예상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다.

나름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으나, 메꾸지 못하는, 메꾸고 싶지 않은 구멍이 있었다.

이 분야에서 내가 가진 비전, 즉 나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

핑계라고 한다면 핑계일 수 있지만, 이 분야에서 내 장기적인 미래를 고민할 엄두가 안 났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작 3개월짜리 체험형 인턴 나부랭이를 뽑는데 그런 걸 물어보겠어 라며 애써 자기합리화를 하고, 준비 없이 면접장에 들어갔다.



체험형 인턴과 전환형 인턴.

뭐 쉽게 말하면 정규직 전환의 부담이 없는 단기인력을 기업에서 충원하기 위해 만든 게 체험형 인턴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아직은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기에 경험이 없는 사회초년생의 비전만을 보고 그간의 무경력 무스펙을 눈감아 주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오히려, 체험형 인턴은 경력보다 그 분야에 대한 열정과 비전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난 그 가장 중요한 게 없었다.

가지고 싶지 않았던걸 수도 있다.

나의 마음은 그리고 나의 미래는 다른 곳에 있기를 간절히 바랐기에.



면접장에서 그들은 내가 이 분야에서 나의 역할과 미래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알아차렸다.

친절하게 상냥한 말투로 그렇지만 예리하게 나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재차 다른 방식으로 이 분야에 대한 나의 비전을 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아주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답변을 했다.

화려한 언변으로 치장된 알맹이 없는 답변을 수 없이 많은 지원자들을 봤을 그들이 몰라봤을 리 없었다.

그래서 내가 떨어진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내가 붙었다면 그게 오히려 적폐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어쨌든, 난 떨어졌고, 이 긴 글이 탈락한 자의 비굴하고 찌질한 자기변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떨어지고 나서 아쉬운 마음이 크세 들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이걸 원했던 건가 싶기도 하다.


그치만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어쨌든, 거절은 아무리 당해도 익숙해지는 법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상대를 얼마나 원하는가와 관계없이 나를 원치 않는다는 게 기분이 좋을 리 없으니까.




이게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얘기다.

그 이후 한동안 내게 진짜 필요한 게 뭔지를 고민했다.

내가 일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스펙을 쌓고자 함인 건지 그러니까 이 기다림의 시간이 내 인생의 공백으로 비춰질까 두려운 건지 아니면 고시판에서 절하되었던 나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은 건지, 남들이 그러하듯 고정적인 일상을 살아내고 싶었던건지.



고민 끝에 난 좀 다른 방식으로 카스트를 탈피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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