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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멘 Mar 12. 2024

낭종

1.


도현은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훤히 드러난 그의 등은 무영등 아래에서 마치 연극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무대 같았다. 무대와 다른 점이라면 하나, 그의 등 우측 상단에 튀어나온 낭종이었다.




2.


예담은 소스라치며 도현을 밀쳐냈다. 얼굴에는 경멸스러운 표정이 일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너 등에…이상한 거 만져져…”

“등?”

“볼록 튀어 나온 거 뭐야?”

“아, 등에 낭종 있는데 그거 말하는 거야?”

“……징그러워.”

“뭐라고?”

“이런 말 해서 미안. 하지만, 진짜 징그러워.”


그는 도현의 등에 난 낭종이 마치 지네라도 되는 양 말했다. 이불로 가슴을 가린 것을 보아 도현과 같이 잘 생각은 아주 접은 듯했다.


“비위생적이거나 전염되는 거 아니야. 그냥 피부염이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끔찍해. 제발 옷 좀 입어 줘. 부탁이야.”


그 말과 함께 예담은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도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셔츠를 주워 주섬주섬 입는 것밖에 없었다. 단추를 잠그며 도현은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해 보려 애썼다.


그는 예담과 함께 속초로 하룻밤 여행을 떠났다. 연인이 되고 나서는 처음으로 단둘이 떠나는 여행이었다. 물론 연인들의 여행이 으레 그렇듯 속초는 동침을 위한 미장센에 불과했다. 사실 도현은 바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며 해산물은 맛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예담 또한 바다가 예쁘다고 탄성을 내면서 속으로는 옷자락 안쪽까지 파고드는 찬 바닷바람에 싫증이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야 이러나저러나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요컨대 이런 것이다. 초저녁에 도현은 예담과 함께 해변을 걸었는데, 황금빛 태양이 바다 밑으로 녹아내리듯 저무는 풍경을 보며 아주 흡족해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을 아예 안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보다는 밤이 멀지 않았을뿐더러 예담과의 첫 섹스를 향해 달리는 서사의 연출이 미적이기까지 하다는 사실에 황홀감을 느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밤이 되어 도현과 예담이 옷을 벗고 서로의 맨등에 처음으로 손을 대는 순간 모든 서사는 무너져 내렸다. 연극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무대에 느닷없이 지네가 나타났다! 지네를 본 헤라클레스는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질렀고 제우스는 왕좌에서 뒤로 엎어졌다. 무대의 조명마저 나가자 혼란 속에서 연극이 중단되었다. 몇몇 관객은 폭소를 터뜨렸고, 몇몇 관객은 분통을 냈으며, 몇몇 관객은 흐느꼈다.


—라고는 해도, 이 비유는 납득할 만한 비유는 아니다. 도현의 등에 있던 것은 지네가 아니라 낭종이었다. 연극이 지네 때문에 중단될 수는 있어도 배우의 등에 난 낭종 때문에 취소되는 상황은 상상할 수 없다.




3.


교차로에는 대여섯 명의 중년 남성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중앙의 연사자는 보면대에 놓인 종잇조각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신의 재림과 영생, 그리고 불지옥에 대해 읊조렸다. 다른 남성들은 듬성듬성 거리를 둔 채 연사자 주변에 서 있었다. 서구식 의상을 차려입은 데다 중절모자며 나비넥타이까지 대동했지만 하나같이 낡고 헤진 것들이라 위엄 있어 보이기보다는 실소를 자아내는 차림이었다.


도현은 낭종을 제거하러 피부과에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맞은편에 있는 피부과로 들어가기는커녕 교차로에 모인 사이비 종교 집회를 우두커니 바라보며 하염없이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그들은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다. 때문에 연사의 말 속으로 침잠하며 전율하는 것인지, 지나가는 시민들의 굴욕적인 시선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인지, 이미 수십 번 참여했고 앞으로 수백 번 더 참여해야 하는 전도회에 지친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도 더는 분간할 수 없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도현은 그 모호함이야말로 이 종교를 영속시키는 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4.


밤이 깊었다. 도현은 침대의 왼쪽에, 예담은 침대의 오른쪽에 누워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지만 예담이 보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예담이 말했다.


“낭종 피부과에서 제거해 준대. 서울 돌아가면 치료 받아.”


그 말에 도현의 마음속에서 공포가 일었다. — 뭐라고, 공포? — 그렇다. 공포가 일었다! 도현은 나지막이 말했다.


“꼭 제거해야 할까?”


예담은 상반신을 벌떡 세웠다.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간절히 부탁하는데? 이거 복잡한 수술도 아니고 후유증도 없어. 진료비도 얼마 안 들고. 그런데 뭐가 안 돼?”


“……나 주사 무서워하는 거 알잖아.”


예담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주사 맞기 무섭다고 지금 이렇게 떼쓰는 거야? 너가 애야? 성장호르몬 주사는 맞았으면서.”


하나하나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도현에게도 불평할 구석이 있었다. 애초에 예담은 왜 그리도 자신의 낭종을 경멸스러워하는가?


“만약 내가 낭종 제거 안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몰라. 헤어질 수도 있겠지.”


예담의 대답은 도현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보다는 기괴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예찬하고, 바이런이 낭송하고, 프롬이 변호한 사랑이라는 것이 고작 낭종 하나로 무너지는 귀여운 감정이었다는 사실에 도현의 입가에서 웃음이 피식 터져 나왔다. 하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도현은 서둘러 기침을 연달아 함으로써 터져 나온 웃음이 마치 기침의 전조였던 것처럼 둔갑시켰다.


예담은 다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5.


46번.


도현이 뽑은 대기표의 번호였다. 모니터를 보니 현재 진료를 받는 사람은 35번이었다. 도현이 진료를 받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릴 터였다. 여기 피부과는 예약을 일절 받지 않고 오로지 대기로만 접수했다. 도현은 짜증이 났지만, 직원이 설명하기를 여기 피부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낭종 제거와 같은 일회성 수술은 대기해야 한단다. 이 사실을 들은 도현은 짜증을 누그러뜨려야 하는지, 더 짜증이 나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대기실은 조용했다. 낮게 웅웅대는 소리가 났는데 의약품을 보관하는 냉장고에서 나는 듯했다. 위쪽에는 형광등. 오른쪽에는 벽. 왼쪽에는 몬스테라. 앞쪽에는 모니터(아직 35번이었다). 그리고 뒤쪽에는 출입문과 그 옆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포스터들 — “여드름, 짜지 말고 치료하세요”, “독일에서 개발한 검증받은 탈모 치료제!”, “생기 있는 피부의 열쇠는 수분입니다”, 어쩌고저쩌고, 어쩌고저쩌고.


도현은 장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집에서 푹 쉬고 싶었다. 피부과의 출입문이 그더러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라고 강렬히 유혹했다. 하지만 그런다면 다음번에 예담을 만날 때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벽에 고개를 기댔다. 잠이나 잘 작정이었다.




6.


꿈을 꾸었다.




7.


도현은 잠에서 깼다.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왼쪽, 몬스테라. 오른쪽, 벽. 앞쪽, 모니터(이제 44번이었다). 낮게 웅웅거리는 냉장고 소리.


그는 여전히 피부과에 있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웠다.


왜 지금 은서가 꿈에 나타난 것일까?




8.


“이거 뭐야?”


은서가 도현의 등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나 등에 낭종 있어.”

“아프거나 문제 있는 건 아니야?”

“응, 전혀 아프지 않아.”


은서는 신기하다는 듯이 도현의 낭종을 만지작거렸다. 도현은 그 모습을 애틋하게 지켜보다가 은서의 귀에 입을 가져다 속삭였다.


“사실 이거, 내 스위치야.”

“스위치?”

“응.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인데, 나 사실 로봇이야. 이거 누르면 꺼지고, 다시 누르면 켜져.”

“그게 뭐야.”


은서가 키득거렸다.


“그럼 정말 시험해 본다?”


은서는 손가락으로 도현의 낭종을 꾹 눌렀다. 도현은 위웅— 소리를 내며 침대에 살포시 쓰러졌다. 은서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다시 도현의 낭종을 눌렀고, 도현은 우웅— 소리를 내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깔깔대는 은서를 보며 도현도 같이 웃었다.


“이건 너만 알고 있는 비밀이야.”


도현의 말에 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전쟁이라도 나서 도현이랑 헤어져도 다시 만날 수 있겠다. 등에 스위치 있는지 확인하면 되니까.”

“그러게. 소중히 간직해야겠다.”


창밖에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포개었다.




9.


화면의 번호가 46번이 되기 무섭게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도현 님 들어오세요.”


도현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수술실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한 발짝, 한 발짝씩. 아무 소리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느릿느릿……


마치 지네가 기어가듯이.




10.


도현은 수술대 위에 누웠다. 무영등이 켜졌다. 헝겊이 그의 등 위로 얹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눈은 바닥을 향하고 있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들리는 소리로 추정컨대 옆에서 간호사는 집도용 칼과 바늘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 단 몇 분이 지나면 그의 낭종 — 유년 시절부터 간직해 온 그의 작고 도톰한 낭종은 난도질당할 것이다!


“환자 분.”


의사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마취 주사를 놓을 건데요, 국소 마취고요, 바늘이 들어갈 때 조금 아프고 뻑뻑해요. 마취 도중 심한 통증이 느껴지면 알려주세요.”


도현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낭종에 주삿바늘을 찌르다니, 이것은 분명 아플 것이다. 주사기 안의 액체가 마취액이 아니라 모르핀이라면 차라리 나았을까? 알코올이라면? 암페타민이라면?

 

아니, 무엇이든 중요할까?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자기 신체 부위에 마취액을 넣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그 부위를 칼로 쑤시고 압정으로 박아도 좋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아닌가? 하지만 세상에, 나는 그런 동의를 한 적이 없다. 동의를 할 리가 없잖아? 내가 어떻게 나의 낭종을 없애겠어? 낭종이 없어진다면, 낭종이 없어진다면…!


“그럼 바늘 들어갑니…”

“안 돼요!!”


의사의 손이 멈췄다.


“안 돼요, 싫어요! 저는 수술을 받기 싫어요! 수술대에서 내려 주세요!”


도현은 헐떡거렸다. 그는 고개를 돌려 의사와 눈을 마주쳤다. 의사는 가만히 서 있었다. 냉장고가 웅웅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이내 의사는 간호사와 눈을 잠깐 마주치더니 가볍게 웃었다. 그는 도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환자 분께서는,”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한 목소리였다.


“…겁이 많으시군요.”




11.


양평의 한 숙소에서 그들은 옷을 벗었다. 침대 위를 유영하듯이 예담은 도현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어루만졌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매끈한 등이었다. 예담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도현은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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