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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원양 Feb 04. 2018

역사도 데이터 아닌가요?

인문학도와 데이터 시각화

며칠 전 아는 동생과 함께 그리스 음식을 파는 식당에 다녀왔습니다. 반 오픈형 형태의 주방과 다섯 테이블 정도가 있는 그리 넓지 않은 규모의 식당이었습니다. 두 테이블에는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중이었고, 주방에는 식당의 주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분이 요리를 하시고 계셨습니다. 식당 분위기를 살피던 저희도 자리를 잡고 대표적인 메뉴를 골라 주문을 하였습니다. 주문을 한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옆 테이블에 음식을 내놓으시면서 먹는 방법은 친절히 설명하시는 주인아저씨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다정하셨습니다. 곧 저희가 주문한 음식도 나왔고, 똑같이 친절한 모습으로 설명해주시더군요. 마치 친구네 집에서 밥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무리할 쯤이 되자, 먼저 자리를 떠난 테이블을 정리하시던 주인아저씨가 말을 거셨습니다. "음식은 맛이 괜찮았나요? 부족하진 않았나요?"로 시작한 저희의 대화는 한참 동안 이어졌습니다. 올해에는 식당을 한 지 20년이 되는 해여서 신메뉴 개발을 위해 여행을 떠나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산을 하는 것 이외 가게 주인 분과 이야기를 하는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또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철학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희도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날 때쯤 주인아저씨는 저희에게 전공이나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동생은 경영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답했습니다. 크게 연관성 있지는 않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저 역시 대답을 하였죠. 역사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데이터를 다루는 일을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과 함께요. 그러자 아저씨는 이렇게 되물으셨습니다.


역사도 데이터 아닌가요?


그리고 곧 '지금이야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선택한 것들들이 하나의 큰 맥락 안에서 다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 자신이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요리를 하며 식당을 운영하고 있음을 예로 들어주시면서요. 또 역사학 전공자로서 가진 통찰력이 어디에서든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응원의 말씀도 더해주셨습니다. 사실 전 그의 설명을 듣기 전 이미 그가 제게 되물었던 문장만으로도 깊은 공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웹서핑을 하던 중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진행된 '데이터 시각화 워크숍 2018'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데이터 시각화 워크숍 2018

워크숍 리서치의 과정과 결과물이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되어 있어 천천히 한 작품 한 작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데이터 시각화의 결과물과는 다른 형태입니다. 그 흔하디 흔한 차트 하나를 보지 못했으니까요. 대신 앞서 이야기했던 그리스 식당 주인아저씨의 '역사도 데이터 아닌가요?'란 물음에 대한 답을 시각화된 결과물로 보는 듯했습니다.

완벽한 세입자/완벽한 집주인, 김도현
대왕코너 화재사건의 대한 기억모음, 이종웅
맞어 거기야, 최건혁

여러 작품 와중에도 제 마음에 와 닿는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나간 화재 사건에 대한 기억을 모으는 방법으로 신문자료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수집하여 영상으로 만든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또 동네에 대한 기억을 엄마와 함께 되짚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은 결과물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언젠가 저 역시 엄마와 비슷한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나 공감하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웹사이트를 방문해 직접 작품을 감상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데이터 시각화'란 이름의 워크숍, 역사를 풀어낸 작품들.

역사학 전공자로 데이터 시각화를 이야기하는 나.


이번 주는 어떤 우연인지, 역사와 데이터 시각화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몇 가지 기억들이 불규칙적으로 떠올랐습니다. 가령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시던 전공 교수님을 이해하지 못했던 제가 그를 체감하게 되었던 '현실'의 일들이라 요약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또 그 와중엔 역사를 배웠던 지난 시간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도 있습니다.


어디서든 중요하다고 언급되는 통찰력이 데이터 분야에서도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데이터'라 하면 기술적인 부분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이번 주 발행한 시각화 콘텐츠 가이드 포스팅을 작성하며 데이터의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는 데이터 리터러시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것 역시 이와 맥을 같이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위에서 데이터 시각화 워크숍의 작품을 인상적이라 여긴 이유에도 역사를 해석해 내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와 관련해서 꾸준히 고민해, 기회가 될 때에 준비된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이미... '데이터 리터러시'를 주제로 한 글을 팀 내부에서 준비 중입니다..ㅎ)


더불어 언젠가 '문송합니다'로 요약되어 언급되던, 현실의 취업난 당사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조심스레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리스 식당 주인아저씨로부터 받았던 따뜻한 응원을 그대로..!


* 이미지 출처 : 일상의 실천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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