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데이터로 활용한 시각화 콘텐츠 사례
데이터를 시각화한다고 하면 흔히 숫자가 가득한 표(테이블)를 차트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오로지 이것만이 데이터 시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구글, 네이버 등 검색 엔진에서 이미지나 노래 검색을 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검색 엔진이 방대한 범위의 데이터 가운데 내가 원하는 데이터를 찾아준다는 것을 감안하면, 데이터는 숫자뿐만 아니라 이미지, 음악 등을 포함하는 방대한 형태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데이터 시각화를 할 수 있는 데이터도 언제나 '숫자'인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데이터 시각화 콘텐츠 중 '사진'을 데이터로 활용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특정 주제의 사진을 모으고, 시각적 패턴을 근거로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것이다. 이에 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알아보자.
뉴욕 타임스의 2013년 9월 기사인 'Front Row the Fashion Week'은 뉴욕 패션 위크 동안 디자이너별 컬렉션 사진을 모아 시각화한 것이다.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프로엔자 슐러(Proenza Schouler), 톰 브라운(Thom Browne) 등 유명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특정 사진 위에 마우스 오버를 하면 사진이 확대되어 보이는 인터렉티브 요소가 눈에 띄는 동시에, 사진 자체를 데이터로 활용한 시각화 콘텐츠로서 필자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콘텐츠이다. 단지 컬렉션 의상의 사진을 찍어서 모아놓았을 뿐인데 각 디자이너의 특징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동시에 시각적 패턴을 근거로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 시각화의 장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콘텐츠 가장 하단에는 주요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포함하여 총 91개 컬렉션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시각화 자료를 배치하였다. 특히 각 컬렉션의 차이를 색(color)을 기준으로 빠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지난해 10월 BBC가 발행한 'The ultimate foaces of global power' 기사는 세계 주요 국가 정상의 사진을 활용한 두 예술가의 작품과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다. 두 프로젝트 모두 사진을 데이터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지만, 그중 조금 더 눈길이 가는 프로젝트는 터키 출신의 예술가 Guney Soykan의 'Face of Nation'이다.
국가별로 지난 50년간 정상 얼굴 사진을 하나의 초상화로 만드는 프로젝트로, 각 정상들의 사진은 통치기간을 기준으로 잘라서 활용되었다. 각 국가의 초상화에 사진 조각이 많을수록 여러 차례 국가의 지도자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사진의 주인공을 확인해 통치 기간이 가장 길었던 인물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다.
나아가 기사에서 Guney Soykan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몇 가지 인상적인 인사이트를 더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백악관 공식 사진에서 정상은 모두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북한의 경우 지도자가 3명의 유사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고, 헤어스타일이 유사해 작업 결과물이 마치 한 명의 얼굴과 같았다는 것이다.
풍자를 주제로 한 <CA> 238호 내용을 살피다 발견한 사례로 양민영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 'PGH : 2013/15 SSFW'이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입은 롱 재킷 사진을 데이터로 활용하였다.
취임 첫해에 가장 많이 입은 옷의 색은 보라색과 회색이었고 그다음 해에 많이 입은 색은 파란색과 초록색이었다. 2015년에는 빨간색과 초록색을 가장 많이 입었다. 이렇게 비슷한 모양의 옷을 색깔별로 입는 일명 ‘깔별’ 패션을 선보이는 정치인으로는 독일의 총리 앙겔라 메르켈과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이 있다. 이 전단은 네덜란드 디자이너 누르체 반 이켈렌(Noortje van Eekelen)의 ‘비극의 스펙터클(The Spectacle of the Tragedy)’ 중 일부인 ‘메르켈 팬톤’의 박근혜 버전이기도 하다.
- 양민영
의상 사진을 활용했다는 측면에서는 앞서 살펴본 뉴욕타임스의 'Front Row the Fashion Week'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정치인을 콘텐츠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Guney Soykan의 'Face of Nation'와도 접점이 있다.
'AERIAL VIEWS' 프로젝트는 독일 사진작가 Bernhard Lang가 헬리콥터나 작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땅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사진을 통해 지상(땅)에 있는 구조물의 형태나 위치 등의 패턴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정 주제에 대한 사진을 데이터화 하여 모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여타의 사례와 차이점을 갖는다. 2015년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Sony World Photography), 2015년 국제 포토그래피 어워드(IPA) 우승작으로 손꼽힌 이 프로젝트는 데이터 시각화를 목적으로 한 프로젝트는 아니나 지상의 구조물의 시각적 패턴을 근거로 우리 삶에 대한 폭넓은 인사이트를 전달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의 블로그를 통해 더 많은 작품을 확인할 수 있으니, 꼭 방문해보길 강추한다!)
Truth & Beauty Operations의 프로젝트 'Multiplicity'는 수집한 사진을 바탕으로 도시의 초상화를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2017년 한 해 동안 프랑스 파리 도심에서 사람들이 찍고 소셜 미디어에 포스팅한 사진 중 2만 5천 장을 선별하고, 이를 지도 형태로 구성한다. 사진은 뉴럴 네트워크 분석 기법에 따라 분류하고, 비슷한 이미지들을 가까이에 배치하는 형태를 갖는다.
위 사진은 분석 결과에 따라 분류된 사진의 예시이다. 이를 통해 도시에서의 사람들의 행태를 파악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이 프로젝트가 인상적인 이유이다. 사람들이 찍은 수많은 사진을 데이터로 활용, 분석 및 시각화 결과물을 바탕으로 도시가 전달하고 싶은 이미지가 아닌, 실제로 사람들이 도시에 대해 갖는 느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프로젝트의 결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파리의 '무언가'를 알 수 있다.(혹은 그 반대를 찾을 수도 있다.) 위 이미지 중 왼쪽 사진은 오랑주리 미술관의 유명한 모네 그림을 찍은 사진을 모은 것이다. 사실 이 그림에 대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이를 소셜 네트워크에 공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이는 사진 촬영이 금지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을 만큼 모네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인상적이었다는 것, 사람들은 이 그림 앞에서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했단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프로젝트 소개 페이지의 'Data-less visualization' 파트에는 이 프로젝트의 의도를 '도시를 측정(measure)하는 것이 아닌 묘사(portray)'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더불어 데이터 시각화 프로젝트라 하기에 언뜻 맞지 않는 듯한 '통계보다는 탐색과 해석을 위한 것'이라는 프로젝트의 설명 문구가 '데이터 시각화,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이 프로젝트는 2018년 5월부터 9월까지 파리 Fondation EDF에서 열리는 123 데이터 전시회의 일환으로 전시되고 있다. 전시장 방문객들은 전시장에 정사각형 형태로 구성된 공간에서 조이스틱, 터치 장치를 사용하여 시각화 결과물을 직접 탐색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사진을 데이터로 활용한 흥미로운 시각화 사례 5가지를 알아보았다.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진 이 사례들은 모두 사진을 데이터로 수집하고, 시각화하여 인사이트를 도출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한 패션, 정치, 도시 등 넓은 범위의 주제를 다루고 있어, 주제 분야와 크게 상관없이 시각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데이터 시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흔한 막대 차트 하나 없는 데이터 시각화, 이 또한 매력적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