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시각화를 일로 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일'에 대한 소회
대학 때엔 '전공이 뭐예요?', 사회에선 '어떤 일 하세요?'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자주 듣고 건네는 첫 질문에는 '하는 일'이 있다. 가장 쉬운 질문이자, 그 답도 비교적 명료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 거예요?
나 역시 많은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 답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내 대답을 들은 어떤 이는 '디자이너'를 떠올렸고, 또 어떤 이는 '기획자', '브랜드 디렉터' 등을 떠올렸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말하는 나도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의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쉽지 않았다.
지금 그리고 지금껏 내가 해온 일의 중심에는 '데이터 시각화'가 있다. 일이지만, 관심사이기도 하다. 대학 수업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인포그래픽'의 개념과 활용 과정이 흥미로웠고, 이후 일로 접하게 된 '데이터 시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큰 관심사가 되었다.
'데이터 시각화'를 중심에 두고 일을 한 지 5년째가 다 되어가던 지난해 어느 날, '데이터 시각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브런치 구독자 한 분과 만남을 가졌다. 또 다른 어느 날에는 예상치 못한 인터뷰 제안도 받았다. 모두 '일로서 데이터 시각화'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데이터 시각화'가 내가 하는 일이자 관심사의 중심이 된 배경에는 회사가 있다. 처음 시작은 '데이터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콘텐츠팀에 소속되어 데이터 기반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보다 넓은 범위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직원 개인의 업무 범위는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다. 처음 시작은 작아도,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는 조직과 개인의 상황에 따라 그 범위가 넓어진다. 나 역시 그래 온 듯하다. 그래도 중심에는 '데이터 시각화'가 있다.
데이터 시각화 디자이너? 기획자? 어쨌든 이런 일을 해요.
숫자를 멀리하던 인문학도인 나는 어쩌다 '데이터 시각화'가 좋아졌을까? 내가 경험한 '데이터 시각화'는 데이터에 대한 깊은 전문 지식 없이도 데이터를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데 효과적으로 역할을 했다. 더군다나 숫자를 그래픽으로 요약해 표현하는 방식도 무궁무진해, 보고 있으면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 데이터를 읽는 능력, 데이터 리터러시를 쉽게 향상 시킬 수 있는데 시각화가 한몫 톡톡히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데이터 전공자만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고, 활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므로, 시각화를 통해 누구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래서 '데이터 시각화를 알리는 일'을 한다. 시각화는 무엇이고, 왜 알아야 하는 것인지 등 다양한 주제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한다. 주로 글을 쓰지만, 글 말고도 다른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 때도 있다. 교육, 세미나를 위한 커리큘럼과 콘텐츠를 만들고 직접 강연의 자리에 서기도 한다. 다양한 콘텐츠 기반으로 시각화를 알리는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시각적 분석이란 데이터를 시각화 요소로 표현했을 때 나타나는 시각적 패턴을 근거로 데이터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내가 가장 오랜 기간 한 일은 시각적 분석 기반의 데이터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다. 때로는 요청에 의해, 때로는 자체 기획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든다. 시각화 차트와 글로 구성된 기사 형태일 때도 있고, 보고서나 시각화 대시보드 일 때도 있고, 인터랙티브 콘텐츠 일 때도 있고, 형태는 여러 가지이다.
보통 콘텐츠 제작을 위해서는 데이터 수집 및 정제, 시각화 제작, 인사이트 도출, 콘텐츠 구성 기획, 제작 및 발행의 과정을 진행한다. 경우에 따라서 혼자서 하기도 하고, 여럿이서 같이 하기도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나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내 새끼(?)' 하나 만든다는 생각과 애틋함을 갖고 만든다. 그래야 결과물도 기분도 좋다.(나는!)
콘텐츠 안에서 사람들은 데이터 시각화를 경험하고, 데이터의 의미를 스토리로 이해한다. 짜여진 스토리이므로 어려운 데이터도 쉬운 스토리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한편, 조직 안에서도 시각적 분석을 활용한다. 조직 내 주요한 데이터를 시각화 대시보드로 만들고, 모니터링한다. 특별히 온라인 마케팅 액션의 결과 지표를 모니터링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해 전략의 수정과 새로운 액션을 실행하는 데 이용한다.
시각화 차트를 만들 수 있는 방법과 툴은 다양하다. 시각화 유형은 많지만, 상황에 따라 주로 사용하는 시각화 유형은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다. 따라서 누구나 상황에 맞게 시각화를 만들고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럿이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맛은 제각각이듯이 시각화도 누가 어떤 생각을 갖고 만드냐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다. 또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만족도가 다르듯이, 같은 결과물도 사용자마다 만족도(효과)도 다르다.
나는 누구나 시각화를 만들어 효과를 경험하고 활용하길 기대하는 동시에 '더 나은 시각화는 무엇인지 제안하는 일'을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각화를 사용할 사람에 대한 분석이 필수다. 음식 만드는 사람이 먹을 사람의 입맛과 취향을 고려하는 것과 같다. 사용자에 대한 니즈 분석은 물론이고 활용할 데이터 정보를 분석한다. 데이터를 어떤 목적으로 활용하고 싶은지, 데이터로 무엇을 알고 싶은지에 대한 주요 니즈가 정리되면 어떤 형태의 시각화가 효과적일지 기획해 제안한다. 주로 그 형태는 시각화 대시보드이다.
조직마다 시각화 대시보드를 만들고 활용하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간단하게는 정해진 몇 가지 데이터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화면이 필요한 경우이고, 복잡한 경우 데이터 시각화 대시보드를 중심으로 어떤 시스템(혹은 플랫폼)을 만들려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기획의 구체적인 업무 범위와 역할은 프로젝트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얼마 전 지난해 제안을 받은 인터뷰 결과물로서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책은 청소년을 위한 직업 가이드로, 나를 포함한 5명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일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 담겼다.
인터뷰 진행 당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는 단어 안에 내가 포함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책을 만드는 에디터님에게도 물었던 기억이 난다. 직업 가이드로서 청소년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시각화에 대해 전하고 싶은 마음에 진행하였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는 단어 안에 내가 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러나 데이터를 활용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선 비슷한 맥락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인문학 전공자인 내가 데이터 시각화 일을 하게 된 배경과 실제 업무는 어떤지, 또 그보다 어릴 적 이야기와 모습까지도 언급된다. 책을 받아보니 나로서는 뭔가 부끄러움이 느껴졌지만, 아무쪼록 '데이터를 일로 하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