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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구르르 Dec 20. 2022

20살 축구선수의 대기업 입사기

'축구선수인 나에게 회사에 입사하라고? 그것도 대기업에?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국에 실린 나의 글


1995년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가을 운동회가 끝났을 때였다. 집으로 향하는 나를 무엇보다도 기쁘게 했던건 다름 아닌 손목에 찍혀 있는 1등이라는 도장이었다. 100m 1등이라는 나름 감격적인 순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반쯤 걸었을까? 건장한 체구에 까무잡잡한 피부의 한 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프로 축구선수 출신이 라는 우리 학교 축구부 감독 선생님이셨다. "달리기를 참 잘하던데. 축구선수 누구 좋아하니?"


그렇게 선생님의 몇 마디에 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운동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 후 학업은 포기한 채

이 길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10년이란 세월 동안 운동에만 매진하게 되었다.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고 어느새 졸업이 다가오고있었다. 고등학교 축구선수였던 나는 특기생 자격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노력했고. 수험생 못지않게 고민하고 걱정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대학교.. 축구부가 아닌 대기업 0 전자에서 나에게 입사 제의를 해왔다.처음에 나는 무척 의아했고 어리둥절했다.축구선수인 나에게 회사에 입사하라고?그것도 대기업에? 알고 보니 회사에서 운영하는 축구팀이 있다고 했고 그곳에선 회사 업무를 겸하기 때문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현역 선수는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더 큰 꿈을 위해 프로나 대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했지만 좋은 회사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나에게 큰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사를 결정했다.


하지만 내 인생 최대의 난관은 그때부터였다."사회라는 곳이 아무리 힘들다고 할지라도 운동할 때만큼 하겠어?" 그냥 열심히 하면 되겠지 했던 내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지금까지의 내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던 것이다. 초등학교 이후 줄곧 운동만 해왔던 내가 대기업의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한다는 게 사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고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첫 경험이 기억에 많이 남게 마련이듯 내게도 첫 출근날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모든 것이 생소하고 어색하기만 했고 책상 위에 눈에 띄게 큰 글씨로 쓰여 있던 내 이름 석자마저도 왠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업무가 주어질 때마다 눈앞이 캄캄했고 두려웠으며 무엇 하나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그만큼 이곳은 운동밖에 모르고 살았던 내게 넘기 어려운 높은 산처럼 느껴졌다.남들이 보기에는 꽤 쉬운 업무였지만 그 흔한 엑셀 워드도 잘하지 못하였던 나에게는 눈앞이 깜깜한 일들이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게 나의 주된 일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껏 나를 위해 고생하시며 뒷바라지해주셨던 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포기해버린다면 회사를 나와서도 평생 아무 일도 해낼수 없을 것 만 같았다.나는 다시 마음을 고쳐 먹고 무조건 부딪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웠다. 회사 퇴근시간은 당시 여섯 시 반이었지만 내 퇴근시간은 자정을 넘기는 게 보통이었다


한 번은 내가 회사 동료들에게 밥을 산적이 있었다. 입사한 지 몇 달도 안된 내 월급이 매일 자정이 넘게 퇴근하자 잔업 수당이 더해지면서 웬만한 대리급 월급이 나왔던 것이다. 선배와 동료들은 나를 태 대리님, 태 대리님' 하며 놀림 아닌 놀림을 받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정말 빠르게 흘러갔고 힘들기도 했지만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굳은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하루 후회 없이 보냈다.


그렇게 미친 듯이 6개월 정도를 보내고 나니 어느 날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맡은 업무가 막힘 없이 진행되는 걸 느꼈고 그렇게 1년이 다 되어갈 때쯤엔 꽤 유능한 동료들과 같은 업무가 주어졌다. 내 퇴근시간은 점점 빨라져 제때 퇴근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 시절 나는 앞으로 내 인생을 지탱해줄 중요한 두 가지를 느끼고 깨달았다. "하면 된다. 사람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간에 마음을 굳게 먹고 부딪혀본다면 제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넘을 수 있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그렇게 호된 사회 신고식을 마치고 나는 쉴 틈도 없이 군대에 입대했다. 운동과 회사라는 두 높은 산을 넘어서인지 군생활을 한결 여유 있게

보냈던 것 같다. 제대한 지금도 간간이 힘들 때면 고되었던 첫 사회 경험을 떠올리곤 한다. 앞으로 넘어야 할산들도 문제없다고, 하면 된다고! 요즘 나는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게 된 20대 친구들에게 조금은 거만하게 이야기하곤 한다. "얘들아, 사회란 곳은 말이야...



- 이 글은 현재가 아닌 2008년도에 제가  경험했던 일을 당시에 썼던 글입니다. 참고사항으로 당시 제 나이는 23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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