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 Cup_85 Newbury St, Boston, MA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혼자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이 바로 이곳 Thinking Cup이었다. 복잡한 Newbury Street에서 그나마 적당히 앉을만한 좌석 수도 많고 오래 앉아 있어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이 포인트였다. 매장에서 인터넷이 잘 안 터지기는 하지만 이것도 아직 글쓰기 근력이 부족한 나에게는 수시로 달아나는 집중력을 붙잡아주는 고마운 이유가 되었다. 적당히 어두운 조명과 빈티지한 테이블, 반지하 같은 구조 때문에 안락하게 느껴지는 공간까지 유니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 커피의 불모지‘같은 이곳에서 그나마 진하고 고소한 라테를 파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나에게 이곳이 갖는 최고의 장점은, 바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점이다. Boston에서 생활한 지도 만 3년 차를 맞이했다. 사랑의 유효기란도 3년이라고 하지 않았나? 기혼자로 접어든 지 십수 년이 된 지라 사랑의 유효기간 따위를 따지는 것은 진작에 나의 몫이 아니지만, 3년 차가 되니 Boston과의 사랑도 시들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하루하루가 놀라움으로 가득 차 매일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고, 새로운 영어 표현을 배우며 흥미진진하게 지내던 때도 있었는데. 슈퍼마켓에 있는 과자 한 봉지에도 놀랍고 신기하던 시절을 거쳐 이제는 ’ 서로 알만큼 알아버린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시들해진 나의 사랑 덕분에 나는 이번 겨울을 완벽한 ’ 집콕모드‘로 보냈다. 이렇게 시내에 혼자 나와본 것이 언제던가. 정말 몇 달만의 일인 듯. 집에서 나와 이렇게 혼자 사람구경을 하며 있자니, 전혀 새롭지 않은 이 공간도 오늘은 다른 의미로 새롭다.
공간이 주는 힘은 실로 놀랍다. Boston에 와서 같이 영어수업을 들었던 친구들과 처음 이곳에 왔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혼자 시간을 보냈던 순간들도 떠오르고. 그 위로 오늘의 내 모습이 있다. 집에서 의식 없이 ‘멍’한 의식으로 속절없이 집안일과 ‘나의 일’이 뒤엉켜 먼지처럼 굴러가던 시간들은 하루를 더 가속시켰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인터넷이 안 되는 환경도 나의 시간이 흩어지지 않게 돕는다. 모국어와는 다르게 듣고자 애쓰지 않으면 백색소음으로 흩어지는 주변의 언어들도 나를 방해하지 못한다. 금방 마음이 변해 집으로 쪼르르 흘러들어 갈 수 있는 도보거리가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홀로 섬처럼 머물며 오롯이 혼자 나의 글을 쓴다. 공간의 힘은, 나의 의지보다 강하다.
그저 익숙한 장소에서 멀어졌을 뿐인데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의 환경과 분위기, 시간, 장소에 적응하며 유연하게 변하고 있는 내가 스스로도 놀랍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서 경험하고 싶었던 것은 혼자 오롯이 집중하며 글쓰기를 시작하는 경험이 아니라, ’ 새로운 나‘를 다시 만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 변화‘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 아우터를 걸치고 집에서 나와 내가 갈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나오면 되는 일이었다. 그동안 무엇이 그렇게 지치고 귀찮고 힘들었을까. 단순히 정말 추운 날씨 때문이었을까. 익숙함이 귀차니즘과 같은 편이 되어서,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고 바르고 나가는 화장품도 아끼고 커피값도 아껴보자는 논리로 나를 꽉 잡아 묶었던 걸까? 오늘 나는 홀로 있는 익숙한 공간에서 스스로가 놀랍고도 낯설다. 나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단순하게 실천으로 연결되는 사람이라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액션만 떨어지면 이렇게 열심히 움직이고 애쓰는데 그간 먼지처럼 뒹굴었던 건- 나의 아까운 시간들과 부질없었던 노력들이었구나. 그 일단 시작을 위한 방아쇠를 억지로 당겨보자. 나는 이제 매주 화요일, 이곳에 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