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Boston을 4년간 여행하는 중입니다.

Boston Public Library_700 Boylston St

by 아오리


‘Boston’을 검색어로 치면 나오는 대표적인 사진이 몇 장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초록색 램프가 켜져 있는 Boston Public Library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패턴이 새겨진 높은 아치형 천장, 벽을 따라 빽빽하게 꽂혀있는 고서들, 웅장한 규모의 열람실에 클래식한 초록 램프가 켜져 있는 책상들이 열을 맞춰 줄지어 있는 모습은 이곳을 방문하는 그 누구라도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Boston Public Library


이곳을 처음 찾은 때는, Boston으로 이사한 지 한 달이 막 지났을 때였다. Boston에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일 만큼 유명한 장소이지만 한 달 동안 당장 필요한 살림살이들을 갖추며 낯선 식재료들로 간신히 삼시 세 끼를 해 먹기에도 바빠서, 얼마나 안전한 곳인지 몰라 막연하게 시내까지 나가는 것이 두려워서, 비루한 영어실력으로 혹시나 대처하지 못할 일이 생길까 봐 ‘관광’을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 유럽 배낭여행도 다녀왔던 나인데 ’ 미국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나를 위축시켰다. English Native들에게 나의 비루함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정신없이 집과 아이의 학교를 세팅하던 와중에, 다른 주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하는 친구가 귀국 전 Boston에 들르겠다고 했던 날짜가 도래했다. ’ 그래, 뭐 한 달이면 나도 여유가 생기겠지!‘라고 생각했던 날짜였었는데 이곳에 와서 ‘생활’만 했지 ‘관광’을 다니질 못한 나는 친구를 데리고 어디를 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친구가 놀러 오기 이틀 전, 드디어 큰 맘을 먹고 전 날 찾아본 Boston 관광 코스의 사전답사를 위해 길을 나섰다. 그렇게 내가 Boston에서 처음으로 여행을 하게 된 곳이 바로, Boston Public Library였다.


Copley Square에서 만날 수 있는 ‘뉴잉’스러운 풍경들


Boston Public Library가 있는 Copley Square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그곳이 ‘외국 같다’라고 느꼈다. 우습지만, 꼭 해외여행을 온 것 같았다. 어쨌든 미국에서 한 달을 살았는데 이제 와서 ‘해외여행을 온 것 같다 ‘는 느낌이 드는 것이 스스로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한 달 동안 낯선 곳에서 우리 가족이 아늑하게 마음을 놓일 수 있는 요새를 세우고 그 안에서 우리의 패턴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외부 환경은 온통 낯선 것들 뿐이었고 편안했던 일상은 우리에게 매번 크고 작은 도전이었으니까.


한 달 여만에 그곳에서 나와 내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내가 평생을 살아온 한국과는 너무나도 다른 곳이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나에게 이런 장소의 방문은 그저 ‘여행’이 목적이었을 때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낯선 곳에서 ‘생활’하게 되다니! 그 사실이 설레기도, 두렵기도 했다.


고풍스러운 로비와 중정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Courtyard


그 날, 나는 그렇게 Boston Public Library를 시작으로 마치 오늘 하루 Boston에 놀러 온 관광객처럼 여러 장소들을 구경하고 감상했다. New England 답게 유럽의 느낌이 물씬 나는 성당들, 거리의 빨간 벽돌 건물들, 그림같이 예쁜 공원까지. 내가 이런 멋진 도시에서 4년을 지낼 것이라는 생각에 흠뻑 행복해졌다. 그리고 그 날을 시작으로 셀 수 없이 Boston Public Library을 드나들었다.


습하지 않은 이곳의 상쾌한 여름날, 흩날리는 분수의 물줄기를 보고 앉아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는 Courtyard, 내가 마치 엽서의 일부가 된 것 같이 느껴지는 초록 램프가 켜진 구관의 열람실, 빨간색으로 경쾌한 포인트를 준 활기 넘치는 신관의 구석구석. 너무너무 궁금하지만 나에게 그저 ‘그림의 떡’ 같았던 서가의 책들. 이곳에서 처음 영어수업도 듣고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다.


구관과는 다른 신관의 활기 넘치는 이미지


지금도 일상을 살다가 이곳에 나오면 다시금 여행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이곳에 정착할 계획이 없고, 떠날 날이 정해져 있는 사람이니 나는 이곳에서 여행자가 맞지.’ 싶다가도 ‘한국에서 사는 것도 내가 언제 또 외국에서 살게 될지, 아니면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살게 될지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인데?’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은 마음을 불안하게도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을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만들기도 한다.


4년간의 ’Boston 살아보기‘라는 긴 여행을 하면서 짧은 여행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했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한 가지 장소를 천천히 살피며 이 곳 문화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일상에서 호기심을 갖게 되는 새로운 나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4년간의 이 곳 ‘생활’을 통해, ‘긴 여행’의 매력을 제대로 알아버렸다. 그런 맥락에서, 이곳에서의 마지막 해를 보내며 내년부터 펼쳐질 새로운 한국에서의 긴 여행이 기대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나는 호기심 많은, 어디서든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지구별 여행자니까.


마음까지 평온해지는 Boston Library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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