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_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꼬부랑 할머니’가 되는 것
국민학교 입학 선물로 빨간색 책가방을 선물 받았다. (그렇다, 나는 국민학교를 마지막으로 졸업한 세대이다.) 빨간 에나멜로 빤딱거리던 각 잡힌 책가방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었다.
빨간 책가방을 매고 학교에 가니, 책상 옆에 가방을 걸어 둘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각 잡힌 가방의 손잡이 때문에 가방을 어떻게 걸어도 옆으로 기울어졌다. 기우뚱하게 걸려 있는 빨간 가방의 삐뚤어진 자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방을 의자 뒤에 놓고 앉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 예쁜 빨간 가방이 내 의자 뒤에 반듯하게 자리한 대가로 나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딱 붙이고 바르게 앉는 대신 가방에 기대어 삐딱하게 앉는 국민학생이, 뒤이어 중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진급을 앞두었던 겨울방학, 나는 디스크 진단을 받았고 중학교 3학년 기간 내내 치료를 받으며 하루의 반 이상 교실 뒤에 서서 공부를 했다.
그 이후로 나의 허리통증과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제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핑계로(앗싸!), 희망은 했었으나 못내 스스로 자신 없었던 과고 진학을 포기했고, 허리를 달래 가며 고등학교 3년을 버텨냈다.
대학에 가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래 걷고 난 다음 날에는 허리를 곧게 펴고 걸을 수 없어서 허리를 구부린 채 팔자걸음으로 어기적 어기적 걸어야 했고 신발끈을 묶다가 허리를 삐끗하기도 하는 어이없는 일도 생겼다. 허리가 불편하면 그저 정형외과, 한의원, 마사지를 전전했다.
허릿병 환자로서의 연차가 쌓일수록 통증을 다스리는 노하우도 늘어서, 물리치료를 자주 가는 직장인 정도는 될 수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결혼 후 임신 기간에도 크게 고생하지 않고 보냈다. 아이가 어릴 때 ‘어부바’ 자세를 체득하며 다시 허릿병이 잠시 도지기도 했었으나 그 또한 그럭저럭 넘기며 보냈다.
하지만 내가 걱정이 되는 것은, 예쁜 플랫슈즈를 신고 난 다음날 허리가 아프고 재채기를 하다가도 허리를 삐끗할 수 있는 위험 따위가 아니었다.
나중에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
허리가 굽고 거동이 불편하게 되면
과연 누가 나를 귀찮아하지 않고
살뜰하게 챙겨줄 수 있을까?
나이가 들었을 때 몸이 불편하여 나의 생활이 묶이는 것, 그것이 무서웠다.
그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지독하게 운동을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며 어린아이를 돌보는 삶에서 애초에 시간을 규칙적으로 내어 운동이라는 것을 하는 건 ‘나에게는 없는 선택지’처럼 느껴졌다. 통증이 있으면 그때 그때 다스리며 겨우겨우 일상을 버티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러했던 내 삶에 ‘운동’이라는 단어가 들어온 것은 회사를 그만두면서부터였다. 회사에 붙잡혀 있던 시간들이 비워지니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정답을 실천하듯 ‘운동’을 가장 먼저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서 하는 월 3만 원짜리 요가 수업에서 처음으로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유연하신 동네 할머니들 틈에 끼어 할머니들이 몸을 폴더폰처럼 납작 접으실 때에도 나만 삐쭉 솟아 멀뚱 거리며 버둥거리는 시간들을 한 2년쯤 버텨내고 나니, 나도 제법 코어에 힘이 생기고 상체를 숙여 엎드리면 가슴이 무릎에 닿을락 말락한 납작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아파트 요가 수업은 무기한 중단되었고 나는 간신히 얻은 ‘허리의 평화’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나름 근력을 키워보겠다고 유튜브에서 여러 가지 홈트레이닝 비디오를 보고 이것저것 해보기 시작했다. 요가, 폼롤러 스트레칭, 슬로우버피, 플랭크, 스쿼트, 타바타 등등… 체중이든 근육이든 크게 눈으로 보이는 변화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허리 통증이 줄어들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기 시작한 2022년 3월,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미국 보스턴에서 지내게 되었다. 낯선 미국 생활에 적응하며 부쩍 체력이 부치는 것이 느껴질 무렵, 워낙 여기저기서 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에 그저 ‘나도 한번 뛰어나 볼까?’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집에 있는 운동화를 대충 신고 맘대로 내키는대로 뛰었다. 그러다가 런데이앱 도장 찍기에 맛이 들려 무작정 5km만 내처 달리기를 2년, 온 도시의 응원을 받으며 달리는 보스턴 5K 대회를 계기로 하여 시작된 ‘이 신나는 경험’이 나를 10K, Half 대회 참가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보스턴 시내 곳곳을 달리며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2025년 8월, 3년 반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한국에 돌아왔다. 따끈한 온돌바닥에서 등을 지지는 것도, 집이 아닌 미용실에 가서 하는 새치염색도, 예약 없이 바로 진료를 볼 수 있는 병원들도, 주문만 하면 무엇이든 다 배달된다는 배민도 좋지만 내가 한국에 가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헬스장에 가서 ’ 웨이트 트레이닝‘을 제대로 배워보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 1kg의 가치가 몇 천만 원이라는데, 근육저축도 40대에나 해야 가능한 것이라고들 했다. 근육을 키우는 것만이 내가 ’ 달릴 수 있는, 허리 꼿꼿한 할머니‘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25년 11월, 나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빨간 책가방이 아니었더라면,
나 이렇게 운동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아픈 곳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운동’은 남의 이야기였을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이든 결핍이 있어야 그 소중함을 가장 크게 알게 되니까. 동화에서 공주가 ’ 저주‘를 풀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듯이, 어쨌든 나도 이제서야 그 ’ 빨간가방의 저주‘를 풀고 있는 중이다.
다만 난 ‘공주’ 가 아닌, 허릿병을 툭툭 털고 훨훨 달리고 자유롭게 사는 ’ 건강한 할머니‘가 되어버리고야 마는 나만의 ‘근육엔딩’을 꿈꾼다. 빤딱빤딱 예뻤던 그 빨간가방처럼, 솟아나라, 내 근육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