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마치 창과 방패의 싸움
4년 전 보스턴에서 시작한 달리기를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계절,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여기저기서 하도 러너들이 많이 보이기에 ‘나도 체력이나 길러볼까?’하고 시작했던 달리기였다. 이제 5km는 어렵지 않게 뛰게 되었고, 보통 7-8km를 야외에서 많이 달린다. 기록에 대단한 욕심이 없다면, 10km 대회는 부담 없이 달릴 수 있고 Half 대회는 한 달 정도 바짝 장거리 훈련을 한다면 다시 나가볼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이다. 애플워치에서 알려주는 ‘최대산소섭취량(VO2 max)’ 수치를 빌어 해석하자면, 심폐지구력은 동년배에 비해 높다고 하니 이제 ‘초보러너’ 딱지는 뗀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한지 3개월 정도 되어간다. 지금까지 달리기만 열심히 했던 사람였으니, 웨이트 트레이닝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이 두 운동을 비교하게 되었다.
첫째, 웨이트 트레이닝은 ‘빡공’ 같은 느낌이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향상되는 심폐지구력, 관절의 강화, 러닝 거리와 페이스의 증가와는 다르게, 웨이트 트레이닝은 특히나 초반에 몰입하면 그 성과가 금방 보인다고 전문가들이 말한다.(아직 내 성과를 가시적으로 판단하기는 이르기에,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본다.) 소위 ’ 초보자 효과가 있는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운동을 시작하고 초반에 운동양을 늘리고 집중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도 불과 3개월 만에 탄탄해진 몸을 보면 ‘내가 운동을 헛으로 하지는 않았구나’를 절로 느끼게 된다.
둘째, 웨이트 트레이닝은 부상을 방지하고 주동근의 정확한 사용을 위해 꼭 지켜야 하는 ’바른 자세‘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람의 체형마다 약간씩 변형은 있지만 최소한 허리나 관절 부상 방지를 위해 힙힌지 사용이나 허리 아치 유지같이 꼭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이를 몸에 정확하게 체화시키기 위해 레슨을 받기도 하는 것이고, 개인운동을 통해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 “이 운동, 공부하는 거랑 똑같은데요?” 나는 선생님께 배우고, 복습하고, 연습하고, 다시 교정받고, 다시 해보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하면 할수록 나아지는 모습이 달리기에 비해 금방금방 보여서 더 집중하게 되기도 했다.
최근 한국에도 러닝인구가 증가하면서 바른 주법을 가르쳐주는 달리기 수업도 많이 생기고 있다. 보스턴에서 4년을 뛰면서 다행스럽게도 큰 부상 없이 달리기를 이어올 수 있었고, 자기만의 스타일로 자유롭게 뛰는 러너들을 워낙 많이 봐서인지 그간 자세 교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다만 팔자걸음 때문에 뛸 때도 혹시 관절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걱정스럽긴 했었다. 하지만 이것도 억지로 교정하는 것보다는 보강운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뛰는 것이 낫다고 하여 그저 꾸준히 거리를 늘리며 뛰는 것에만 집중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꾸준히 뛰는 거리와 시간을 늘리다 보니 심폐지구력은 자연스럽게 향상되었다. 천천히 자기의 페이스로 꾸준히 거리를 늘리며 뛰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느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달리기의 본질이기도 했다.
셋째, 웨이트트레이닝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바벨을 한 번 들더라도, 머신을 한 번 당기더라도 숨을 새로 고르고 자세를 고쳐 잡고 집중해서 임하면 그 동작의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 들지 못하던 무게를 들게 되기도 하고, 타깃으로 삼은 근육에 적정한 자극을 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웨이트트레이닝 초보인 나는, 한 시간 반정도의 웨이트트레이닝 후 꽤나 피로도가 높다. 처음에는 한 시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20여분 달리기를 했을 뿐인데도 종일 머리가 멍하고 피곤한 느낌이었다. 하루의 계획이고 뭐고, 당장 피로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고 멍해지는 ‘브레인포그’를 겪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중추신경계’를 피로하게 만든다고 한다. ‘중추신경계’는 사고활동을 할 때나 쓰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운동을 하는데 피로해진다니… 피부로 와닿지 않기에 더 신기한 부분이다. 여하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수록 운동신경이 발달함은 물론이고, 특히나 초반에는 근육과 신경의 연결이 늘어나서 근육의 반응속도와 활용능력이 좋아진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지금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신경계를 재구성하는 중인 것이다! 어메이징!
달리기는 이에 비해 좀더 릴렉스되는 운동같다. 달리는 순간, 긴장이 풀리고 생각이 리프레쉬됨을 느낀다. 학자들은 달리기는 전진하는 운동이기에 우리의 생각을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으로 바꿔준다고 말한다. 강도 높은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지 않는 이상, 기분 좋게 심박이 뛰고 피가 돌며 몸이 깨어난다. 어느 정도 달리기에 익숙해져서 체력이 올라가게 되면, 뛰고 난 후 오히려 더 활기차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달리며 몸의 움직임과 주변 상황에 집중하게 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만큼의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대신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심폐지구력과 근지구력을 필요로 한다.
넷째, 운동복 스타일도 다르다. 내가 가진 운동복들은 대부분 러닝용인데, 이게 또 묘하게 웨이트 트레이닝 운동복과는 달랐다. 러닝용 의류는 땀배출과 체온유지가 우선이라 상의들은 통풍이 잘 되도록 얇고 가볍다. 레깅스들도 땀이 빨리 마르는 속건 소재들이다. 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 운동복들은 일단 근육의 움직임이 잘 보여야 하고 가동범위가 크기 때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몸에 달라붙는 것들이 많다. 레깅스들도 근육을 잘 잡아줄 수 있도록 탄탄한 소재들이다. 러닝용은 할랑할랑, 웨이트 트레이닝용은 탄탄! 하지만 요즘은 운동복 종류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입고 달리기든 웨이트 트레이닝이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운동복은 자기가 편하고 좋으면 된 거다!
이렇게나 서로 결이 다를 수가 있을까? 어쩌면 달리기와 웨이트 트레이닝은 서로의 상극에 위치한 운동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함께 해나가면 아주 시너지가 좋은 운동들인 것 같다. 달리기로 쌓아온 심폐지구력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데 있어 나에게 ‘지치지 않는 체력‘과 ’빠른 회복’을 선사해 준 것은 물론이고, 하체 근력이 부족해서 다리로만 종종거리며 뛰었던 내가 웨이트 트레이닝 후 자연스럽게 엉덩이와 허벅지를 사용하면서 뛸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러닝 페이스도 올라갔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두 운동들도 공통점이 있다. 이 두 운동들은, 모두 나를 ’현재’에 살도록 돕는다. 바쁘거나 마음이 복잡해서 정신이 콩밭에 가 있어도 일단 나가서 달리거나, 헬스장에 가서 몸을 쓰면 ‘걱정이 다 무엇이냐, 당장은 일단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인간은 참으로 단순한 존재이다. 아무리 고차원적인 생각 속에서 유영하더라도, 어쨌든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항상 물리적인 생존이 우선이니 말이다. 어쩌면 이런 단순함도 고도로 계산된 조물주의 깊은 뜻이 아닐까?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 숨통을 열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마련해 둔 ‘마스터키’ 같은.
달리기든, 웨이트 트레이닝이든 운동을 마치고 나면 솜털처럼 공중에서 휘청거리며 방방 뜨던 마음 따위는 어디로 날아가버리고 좀 더 차분해진 바탕에서 간결해진 문제들을 새롭게 만나게 된다. 헬륨 풍선처럼 휙 날아가버리지 않도록 내 멘털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 운동’이라는 앵커와 잘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이제 그 앵커가 달리기와 웨이트 트레이닝, 두 개가 되었다. 필살기를 두 개나 가진 고수가 된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어떤 방황과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시간이 걸릴지언정 내 자리로 스스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이 두 운동을 통해 아주 조금 확실하게 생겼다.
이번에 새롭게 ’ 웨이트 트레이닝‘이라는 운동을 배우며, ‘새로운 것’에 열려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게 무엇이든, 잘하든 못하든, 설사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계속 이어나갈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실감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의 주는 근력과 여러 가지 다른 이점들을 떠나 내가 달리기만 했더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혹은 알 수 없었을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보디빌더들이 했을 숨은 노력들과 인내, 신경계의 존재, 내 몸을 면밀하게 관찰해 보는 경험, ‘건강’과 ’ 운동‘에 대한 생각 재정립, ’ 집중‘의 즐거움, ’ 새로운 세계’의 존재.
이렇게나 서로 다른 운동들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 유효성을 떠나 ’이 재미있는 것들을 평생 모르고 살았더라면, 어쩔 뻔했어!‘라고 생각한다. 이젠 달리기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함께’ 해나가며 또 어떤 새로운 즐거움들을 만나게 될지 생각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도 무지성으로 4년 전 달리기를 시작했던 나, 그리고 3개월 전 ‘할까말까 할 땐 해라’ 정신으로 PT체험 수업을 덜컥 등록해 버린 나를 모두 쓰담쓰담해주고 싶다. 잘했어,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