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저는 1년 후에 ‘뭐’가 되는 건가요?

제가, ‘운동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 그럴 리가요.

by 아오리



학창 시절, 내가 가장 자신 있었던 체육 종목은 ’오래 달리기‘였다. 왜냐, 내 앞에 아무도 없으면 되는 거니까. 선두 그룹을 유지하려고 그저 이를 악물고 뛰었더랬다.


우연인지 필연이었을지, 어렸을 때부터 몸 쓰는 활동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고무줄놀이도 안 했고(이건 못한 게 아니다. 안 했다!), 자전거도 못 타고, 스키도 남들은 1박 2일 만에 배워서 슬로프에서 내려오는 걸 나는 3박 4일 스키캠프가 끝날 무렵에나 간신히 해냈다. 전 국민의 스포츠라는 배드민턴도 잘 못 치고 수영은 대학시절에 꾸역꾸역 배워 어설프게 물에 가라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정도이다.


순발력도 떨어지고 민첩성도 떨어지고 탄력도 없었으니, ‘운동능력’이 필요한 순간에는(주로 중고등학교 체육 실기평가 때였다.) 필살의 의지와 연습과 노력으로 간신히 극복하며 살아왔다.





난 그냥 몸치구나…

이렇게 운동에는 재능도 뜻도 없는 나였기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할 때에도 큰 기대는 없었다. 하도 40대에는 근육 저축을 시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에 데드라인에 임박해서 숙제를 시작하는 기분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전혀 관심이 없었던 운동이었기에 무엇을 배우게 될지, 어떤 기구들이 있는지, ‘3대 500’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일단 ‘근육을 만들어야 하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야겠네’라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시작이었다.





PT 수업을 시작하고 트레이너 선생님의 지도하에 하나씩 운동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PT 수업을 시작하기 한 달 전쯤 방문했던 ‘러너들의 성지, 남정형외과’에서는 내가 하체 근육이 부족하다며 지금 가진 튼튼해 보이는 허벅지는 근육이 아니라고 하셨었다.(하, 그런 거였나요!) '타고 난 튼튼한 하체'는 그나마 내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함에 있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 중 하나였는데!

여하튼 ‘튼튼해 보이는 하체’와 3년 반동안 보스턴을 달리며 얻어낸 ‘심폐지구력’,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은 어쨌든 해내는, 의무감에서 기인한 ‘성실함’은 내가 그나마 믿고 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가진 이 하찮은 세 가지 여의주로, 과연 근육량을 늘릴 수 있을지… 따위는 사실 운동시작 전에 가늠해보지도 않았다. 왜냐면 여하튼 이건 그냥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능력밖의 일이라고 해도 어쩌겠나. 어차피 해야할 일인 것을. (…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저 세 가지 마저도 아닌, ’ 의무감‘의 파워가 가장 큰 것 같기도 하다.)





초반에는 여러 운동, 기구들을 돌아가며 맛보기 식으로 수업을 했다. 아마 선생님께서는 나의 운동 능력과 신체 특성 등을 파악하시고, 나는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하나씩 깨워가는 과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하나도 안 힘드시죠?”라고 세트 간 쉬는 시간에 불쑥불쑥 선생님께서 물어보셨다. “네… 뭐 별로…” 심폐지구력이 좋아서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운동을 할 수 있겠다고 하셨다. 지나치게 솔직했던 대답의 대가로, 매 수업시간마다 숨 고르기 바쁘게 온몸을 탈탈 털렸다.


그렇게 마치 멱살 잡혀 간신히 끌려가듯, 선생님은 매시간 도전적인 무게와 횟수를 던져주시고 나는 그걸 또 꾸역꾸역 어쨌든 해나가는 열 번 정도의 수업이 지났다.


운동능력 상위 20% 정도 되실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프로그램으로
지도해 드리는 거고요.

제가 관리하는 여자 회원들 중 아마…
5등쯤은 되실 것 같은데요?

“제가요? … 그럴 리가요…“

”집착도 좀 있으신 것 같고, 운동 집중력도 높으시고“

오! 이런 것도 ‘운동능력’에 포함되는 것이었는 줄 몰랐다. 순발력, 민첩성, 협응력 등등 나에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런 능력들만 운동능력이라 생각했었다. 그저 ‘이 운동은 공부하는 거랑 되게 비슷하네…’라고 생각하며 공부하듯 ‘배우고, 복습하고, 모르는 부분 질문하고, 궁금한 것은 좀 더 찾아보고, 혼자 연습했을 뿐’인데 말이다. 물론, 그냥 재미가 있었으니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부분이 제일 크긴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 후 3km씩, 어쩌다 주말 장거리 뛰며 깨알같이 모은 마일리지들. 이런 것도 ‘운동능력’이라 하시는 거 맞죠? (제가 볼 땐, 걍 ‘도른자’ 같습니다만)



사실, 재미있으니 저절로 매일 운동하러 가게 되었던 것 뿐인데. 아, 물론 트레드밀 달리기는 약간 말이 다르긴 합니다만…



이제 이렇게 운동량을 늘리고 하다 보면
저 위 레벨까지 가실 수 있을 거예요.


자꾸 저한테 저 위로 갈 수 있다고 하시는데 도대체 거기가 어디란 말인가요, 선생님. 그곳은 뭐가 어떻게 다른 수준인 것인가요…


그럼 지금 저는 그냥 지렁이인 걸까요. 계속 이렇게 하다 보면, 1년 후 그래서 저는 뭐가 되는 건가요?.

이무기가 되려나 용의 꼬리라도 되려나.

웨이트 트레이닝에서의 ‘용’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결국 내가 ’ 뭐‘가 될지 궁금해졌다.





여하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평생 ’ 몸치‘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는데 내가 ’ 운동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니!

살면서 한 번도 상상이나 기대를 해보지 않았던 부분이었기에 더 기분 좋은 선생님의 칭찬이었다. (물론, 배드민턴을 잘 치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것과는 다른 것이라 하셨다! 아무렴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훌륭한 능력을 타고나서 수월하게 배워나가면 더 신나겠지만,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능력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애써보려고 한다. 재능이 있든 없든 어쨌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된 것 아닌가? 물론, 그 과정이 좀 더 고될 수는 있겠지만, ‘재능 없음’이 또 그 도전과 성취를 특별하게 만드는 한 요소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다!‘는 말은 정말 너무 멋진 말이니까.

어쨌든 결과적으로 난 운동신경도 없고 자전거도 못 타고 배드민턴도 못 침에도 불구하고, 지금 수영과 달리기, 웨이트 트레이닝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레그컬 55파운드, 어시스트 풀업 30킬로… 딱 기다려라. 내가 곧 늬들도 가볍게 해낸다!




어머, 나 심지어 운동능력도 있는 사람이었어!


흰머리도 나고 주름이 늘고 한껏 꾸며도 예전 같지 않은 40대 중년 여자 사람이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운동을 시작해서 잘 이어오고 있는 ‘나의 지금’이 썩 마음에 든다.

되든 안되든 일단 해보고, 꾸준히 내 것으로 만든 몇몇의 것들이 내 안에서 퐁퐁 샘솟는 든든한 근자감의 원천이 되어주는 거겠지?!?


어휴, 거기에 ‘운동능력(운동신경 아님 주의!)’도 한 스푼쯤은 있다니. 뭐라도 더더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 칭찬에 이렇게 홀라당 넘어가면 안 되는데…

1년 후에 나. ‘뭐’가 되려나, 확인하게 되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또 헬스장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