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 반지보다 더 간지 나는, 손바닥의 굳은살

자, 이제 손목 걸고 제대로 해보는 겁니다.

by 아오리



‘웨이트 트레이닝에 대해 저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를 그야말로 온몸으로 피력하던, 웨이트 트레이닝 첫 달의 기억이다. 웨이트 트레이닝 수업을 가면서 반지를 세 개나 끼고 갔던 사람, 바로 저예요, 저!

웨이트 트레이닝 4개월 차가 된 지금은, “... 반지? 그게 뭔가요...?”


보스턴을 떠나기 전 마지막이라며 연말에 뉴욕에 놀러 갔을 때, ’ 찐 뉴욕 기념품‘이라며 5번가 티파니 매장에서 실버링을 하나 샀었더랬다. 그런데 매일 헬스장에 가게 되니, 아직 새 반지가 손에 익지도 않았는데 낄 새가 없게 되어버렸다.



연말, 눈 내린 Central Park도 보고 ‘찐 뉴욕 기념품’도 득템했건만... 악세서리가 아니라 정말 그냥 '기념품'이 되어 버렸네요??





반짝이는 새 반지 대신, 내 손바닥에는 무거운 바벨과 덤벨들이 만들어 준 굳은살이 자리를 잡았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줄다리기를 하고 나면 두껍고 거친 줄다리기 끈에 손이 쓸려서 손가락 바로 아래 발갛게 달아오르던 손바닥 위쪽, 바로 그 자리에 도톰하게 굳은살이 생겼다. 필기를 많이 해서 생긴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의 굳은살 정도가 전부였던 내 손에 이런 굳은살들이 생기는 것부터가 신기했다.


내 손바닥에 올망졸망하게 생긴 굳은살들이, 마치 강낭콩 본잎이 돋기 전 먼저 돋아나는 ‘떡잎’처럼 느껴졌다. 굳은살이 마치 '나의 근육이 본격적으로 솟아날 것임'을 상징하는 신호 같았달까.



(좌) 처음 굳은살이 보인다고 신기해하며 / (우) 3개월 후, 이제 제법 ‘굳은살’이라고 불릴만한?!






그렇게 손바닥에 쌓여가는 굳은살이 마냥 뿌듯하고 신기하게 느껴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선생님께서 굳은살이 생기는 것도 방지해 주고, 내 악력이 부족해서 고중량의 덤벨을 들어 올리기 어려우니 (이것이 그 문제의 14kg 덤벨이었다! 7화 참조!) 웨이트 트레이닝용 그립을 사라고 말씀하셨다. '웨이트 트레이닝용 그립'이라니... 세상에 듣도 보도 못했던 물건이었다.



장비발을 세우기 시작하면,
이 판을 쉽게 떠날 수 없는데...?!


달리기를 하면서 이미 경험했던 일이기에 익히 알고 있었다. 사실 ’ 장비발‘은 ‘애정’의 또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 운동을 하면서 더 잘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마음에 관련 장비들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는 것이다.


운동을 하는 빈도가 늘어나니 관련 운동복도 자연스럽게 더 구입하게 되고, 돌려 신을 신발을 괜히 한 켤레 더 사게 되고… 달리기를 하며 남편과 함께 세워봤던 ‘장비발’이기에, 웨이트 트레이닝 용품을 구입하는 것은 또 다른 설렘이었다. 그 세계로 한발 더 성큼 들어가는 그런 기분.






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용 그립‘은 좀 느낌이 다르긴 했다. ’ 웨이트 트레이닝‘은 이미 바벨과 덤벨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위압적인 운동이었다.


아직 제대로 친해지지 못한 저 무서운 것들을 들기 위해 손목에 뭘 또 휘감고 운동한다는 것은 무언가 나의 실력과 경력에 비해 너무 거창한 느낌이라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인스타 릴스에서 소위 ‘헬창’이라고 뜨던 사람들이 손에 휘감고 있던 무시무시한 그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립을 사서 손목에 감기 시작하면… 정말 손목을 잘라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 손목 내놔.
손목 걸고 제대로 해보자.


… 뭔지 아시죠?





어쨌든, 필요한 것이라 하시니 좋아하는 색을 고르고, 이니셜 각인까지 해서 그립을 주문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며 특별히 구비했던 것이라고는 실내에서 신을 반스 운동화뿐이었기에 ‘공식적으로’ 나의 첫 번째 프로페셔널한 웨이트 트레이닝 장비가 되었다.


그리고 어쨌든, 무엇이 되었든 첫 번째는 늘 설레는 법이다. 앞으로 두고두고 이 그립을 사용하면서 처음 마련했을 때를 몽글몽글 떠올리게 되겠지.



이것은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이리봐도 저리봐도 모르겠구나.



그런데 사실 이렇게 설레고 소중한(?) 그립이라서 아껴 아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막상 사용하려고 하다 보니 두꺼운 가죽과 스트랩에 길이 드는데 시간이 걸리는지 마냥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사실 무엇보다 운동을 할 때마다 손바닥에서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조금씩 탄탄하게 쌓이고 있는 굳은살들을 포기하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얘들이 근육도 아닌 건데, 도대체 왜 나는 손바닥을 거칠고 밉게 만드는 굳은살에 집착하는가.






굳은살도 나의 ‘노력’과 ‘시간’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니까요. 달리기를 하며, 영어공부를 하며,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며 새삼스레 느낀 것이 있다.


사실 이제껏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들은 ’오랜 시간 동안 쌓아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손에 닿을 듯 말 듯, 그리도 닿기 어려웠던 걸까. 그래서 더더더 간절하고 소중하고 대단하게 느껴졌을까.


이 굳은살들도 어쨌든 내가 덤벨을 든 만큼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애쓴 시간들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 떡잎’인 양 지켜주고 싶은 마음인가 보다.

그리고, 친구를 만났을 때 ‘웨이트 트레이닝 하는 사람’ 임을 인증하기도 너무 좋지 아니한가!!



이거 봐, 나 손바닥에 굳은살도 생겼어!!!
만져봐, 만져봐!!


손바닥을 쫙 펴고 팔랑거리며 손을 내밀어보는 것만으로, 아주 쉽게 ‘헬스인’ 임을 자랑할 수 있다.






이쯤 되면 티파니 반지를 포기한 것이 그다지 아쉬운 일은 아니다. 반지야 어느 때든 낄 수 있지만, 내 손바닥의 굳은살은 하루이틀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쇠질을 그래도 100일은 열심히 해야 생기는 거니까!


이 굳은살의 ‘간지’를 포기할 수 없으니, 이니셜 각인까지 예쁘게 한 나의 첫 번째 웨이트 트레이닝 장비, 그립은 적당히 없어도 되는 종목이라면 한 번씩 슬쩍 풀러 놓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선생님께서 데드리프트할 때 도움이 될 거라고 허리벨트도 사라고 하셨었는데…

하… 허리벨트까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챔피언 될까 봐 괜히 무섭고 그렇네요?!?



저 벨트가 필요한 날도 정말 오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