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매력을 '감각'하세요
사람들 중엔 첨 본 사람과도 얘기 잘하고, 자기의 자랑이든 실수든 스스럼없이 말하고, B급취향에 빠진 얘기도 하고, 신조어나 비속어를 섞어가며 젠체하거나 내숭떨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반면 매사 철저할 것 같고, 늘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B급은 쳐다도 안 보고 가격 비싼 하이엔드만 찾으며 농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바른생활만 할 것 같은 사람이 있다.
당신은 어떤 쪽인가. 본인은 후자다. 적어도 남들에겐 그렇게 비친다. (그래서 많은 남자들이 본인에게 친근감을 못 느껴 소개팅이 자주 망한다) 그런데 가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런 말을 듣는다.
"너 이런 매력이 있었어?" "그래 그런말좀 자주 해봐! 너무 좋아!" "너 진짜 알면 알수록 의외의 매력이 있구나" (읭? 내가 뭘 말했는데??)
말하고자 함은 소개팅 성공비법이 아니고 사람의 매력은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 나온다. (자기의 매력이 어떤 장소에서 누구에게 어필하는지 다 알면 신동엽 급의 천재 MC일 것이다...)
수많은 면접 비법을 보면 공통의 규칙들이 있다. "본인이 한 직무가 지망하는 회사의 비즈니스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하라" "본인의 경험이 지망하는 회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논하라"
어제의 일이다. 글로벌 광고 대기업에 미팅(을 가장한 면접)을 하러 갔다. 어디서나 그랬듯, 나는 또 천편일률적인 대답을 늘어놓았다. 그 전 직장에서 기업과 스폰서십을 체결했고, 문제는 뭐였고, 상품은 뭐였으며 어떻게 니즈가 맞았다...그 전엔 미디어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상사가 없어서 내가 수퍼바이징을 다 했다 등등.
이런 '자기 자랑'에 면접관들은 지칠 만하다. 나처럼 '내가 이렇게 중요한 일을 다 했어!'라고 떠드는 사람이 수백 수천 명은 될 것이다. 그들은 내 writing sample을 보자고 했고 그래서 3개를 뽑아 갔다. 뽑아갔을 때 내 심정? 전혀 확신이 없었고 죽이되든 밥이되든 걸레쪼가리라도 갖고가자 ㅠ_ㅠ는 심정이었다.
왜? '광고'와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브랜딩 관련 (광고기사)은 하나뿐, 나머진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 그리고 홍콩에서 구직이 얼마나 힘든지 빡쳐서 쓴 에세이 ('그래도 희망은 있다' 종류의 인터뷰 겸 일기)였다. 더군다나 그중 한개는 동료가 번역했다고 기사 말미에 쓰여있다
근데 예산부서 담당인 미국인 면접관 (임원급)이 눈을 반짝거리며 본 건 노인 문제와 구직 에세이였다. 광고와 아무 상관이 없는 글인데, 섬세한 스케치와 휴머니즘 스토리텔링이 좋았나보다. "살짝 봤는데 디테일이 정말 좋다"고 했다. 읭?? 한국 노인 빈곤문제가 홍콩 광고기업과 무슨 상관? 외국인 취업 힘들어요 징징거리는 게 돈 많은 사람들 비즈니스와 무슨 상관??
...이라는 내 예상은 비껴갔다.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moving하는 요소는 따로 있다. 그게 뭔지는 우리가 모를 일이다. 광고는 섬세한 시각과 스토리텔링이 중요한데, 비록 소재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외국인 구직자들 등 마이너리티였지만 그게 면접관의 마음에 와 닿은 것이다.
(물론, 면접관은 그 자리에서만 감동하고 나중에 내 글을 되돌아봤을 때 광고와 관련이 없다고 휙 던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2시간 대화 끝에writing assignment를 받았고 이는 내 인터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증거다) 기업이 변화를 추구하고, 면접관이 열린 사람이라면 꼭 자기들과 닮은 경력을 원하진 않는 것 같다. 20년 된 베테랑을 뽑을 게 아니니까 말이다.
단 기준이 있다. 삶에 성실하고, 시야를 확장하길 원하고 지적 계발을 추구하는 사람들. 남에 대해 얘기할 때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은 갖춘 사람들. 그들과 진지한, 때론 별스럽지 않은 대화도 즐기면서 나의 어떤 면이 어떤 반응을 불러오는지 '감각'하라. 시선, 온도, 목소리, 표정으로 느껴보라는 것이다.
* 아직도 취직은 더럽게 안되고 있지만 저는 될때까지 할겁니다
* 초기 구독자분들은 곧 저의 성공스토리를 읽는 대박을 맛보실 겁니다 (...가 허언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