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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Jun 11. 2022

자연의 섭리(2)

모운의 숲 1

소녀였다. 분명 소녀였다.

  산꼭대기로 떨어지는 교복 치마의 흔들림은 사뭇 꽃잎의 떨어짐과 다르지 않았다. 찬과 나라는 망설임 없이 소녀를 향해 내달렸다. 나뭇가지 사이로 낡은 운동화가 보였고, 머지않아 소녀의 가녀린 허리가 시야로 들어왔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손에 박혀 있는 나뭇가지를 마구잡이로 빼내면 이 아이는 또 기절할게 분명했다. 나라가 옷가지를 챙기는 사이, 찬은 가지를 잘라낸 후 소녀를 업었다. 주머니에 남은 기억 조각이 얼마 없었다. 최대한 많이 손에 움켜쥔 채 뛰기 시작했다. 달리는 등 뒤로 그놈의 그림자가 엄습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 죽은 거야? 여긴 어디야? 혹시 천국이니? 


계속되는 소녀의 질문에 찬은 나라를 바라보았다. 

-금방 알게 될 거야. 


  나라는 소녀에게 속삭이듯 말하곤 달리기를 계속했다. 소녀의 가방에 달린 펜던트에 ‘자연’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나라가 이름을 읽자마자, 찬과 나라의 손목 시간이 빠르게 늘어났다. 

‘45’ 

자연과 친구들의 팔목에 파란 글씨가 반짝였다. 


  자연은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손과 몸을 보면서도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코를 찌를 듯한 찬의 땀냄새와 숲에서 밀려오는 한기만 느낄 뿐이었다. 업혀 있는 자연의 시야로 입을 벌리며 쫓아오는 시간의 괴물(가칭)이 들어왔다. 숲을 헤치며, 앞으로 달리면서 찬은 먹이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최대한 멀리, 있는 힘껏 던져 댔다. 그때마다 시간의 괴물은 그 방향을 향해 달려 그 무엇을 받아먹고는 또다시 뒤쫓기를 반복했다. 자연은 이 세계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처럼 보이는 나라와 찬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죽었다. 

  자연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죽지 못해 안달이 났던 그날, 그 지하철에서 나라를 보았던 것이다. 자연은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라의 뒤를 쫓았고, 눈을 떠보니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큰 숲, 큰 섬처럼 보이는 이곳으로 떨어지던 순간 죽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나뭇가지에 손을 꽂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었다. 자연은 자신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였고, 꿈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에 저 괴물도, 죽은 이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전부 꿈이라고. 그리곤 찬의 옷자락을 힘주어 잡으며, 잠을 청했다. 꿈임에 틀림없기에. 잠만 들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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