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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Jun 18. 2022

자연의 섭리(3)

모운의 숲


  공기를 가르는 죽음의 비명 소리가 자연을 깨웠다. 나라와 찬은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기라도 한 듯 태연하게 불을 쬐고 있었다. 둘은 지쳐 보였지만, 절대 귀신같은 것은 아니었다. 자연이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모습 그대로였다. 자연은 이렇게 살아있는 그들의 모습이 더 소스라치게 무서웠다. 그렇다면, 내가 죽은 것이 틀림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나라는 자연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죽은 건 아닐 거야

-적어도 아직은 그래 


 찬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입을 뗐지만, 자신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럼 그들은 살아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또 나라가 말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산 것도 아닐 거야

-적어도 아직은 그렇지… 


  이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라는 말은. 뭐 그 중간 어디쯤에 뭐라도 있다는 말인가. 자연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모호한 것을 빼고, 확실히 아는 것은 무엇인지 묻기로 했다.


-이곳은 모운의 숲이야. 여기저기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지. 그건 아마도 살아있는 가족들의 슬픔이 만들어 낸 소리일 거야. 우린 가끔 꿈 여행을 하는데, 그 꿈에선 현실에 갈 수 있어. 현실의 가족들을 보고, 곁에 갈 수 있지. 하지만 이 세계를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몰라.

-왜 힘든 얘기는 다 빼냐? 꿈에서도 시간을 똑같이 흘러. 그 말은, 우리 중 누군가 꿈을 꾸러 가면, 누군가는 이곳에서 잡아 먹히지 않도록 망을 봐야 된다는 거야. 아까 그놈 봤지? 그건 우리의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야. 그에게 잡히면 시간도 없고, 살 수도 없다는 말이야, 알아들어? 


  찬은 말을 쏘아붙였다. 이렇게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눈치를 나라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나라는 자신의 손목을 들어 반짝이는 시간을 보여주었다. 


-44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건 여기서 우리가 지낼 수 있는 시간이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네가 오고 나서 25밖에 남지 않았던 시간이 20일이나 늘어났어.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고, 그건 네가 우리에게 아주 큰 도움을 줄 거라는 얘기겠지?!  


  상기된 듯한 나라의 표정에 자연은 고개를 저었다. 죽은 적도 없는 자신이 여기에 와서 대체 무얼 도와줄 수 있겠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자신들이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그 어떤 말도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 친구들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으니까.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내 삶에 관심이 없었기에, 사는 게 재미없었지만, 이 친구들과 있을 때는 유일하게 살고 싶었다. 아무도 관심 없어하는 내 인생, 그럼 내가 관심 가져 주자고, 이 친구들 덕에 그렇게 까지 생각했었다. 

  자연은 내젓던 고개 짓을 멈추고,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내게 중요한 건 나를 살게 해 준 내 친구들이었으니까. 일단 같이 있으니까. 내가 죽었다고 해도 그건 계획대로 된 일이니 괜찮은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정말 만약에 우리가 아직 죽지 않았다면, 같이 살아나갈 수 있다. 


-그래, 같이 살아나갈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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