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라이팅 :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자신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 네이버 오픈사전
이렇게 적고 보니, ‘가스 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더욱 무섭게 다가온다. 어릴 적, 상황을 이용하여 선생님께 나만 특혜를 받거나, 혹은 친구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 같은 일들이 떠오르면서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이 들었다. 나는 상황판단이 좀 빠른 사람인데, 그런 잔머리를 이용해서 상황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온 적이 많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자랄 때는 별생각 없이 했던 행동들이 이제는 범죄(?)에 가까운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나를 싫어할 이유를 또 찾은 것인가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남편은 종종 궁지에 몰린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다름 아닌 아내와 얘기를 하면서 말이다. 내가 그 사람을 죄인처럼 만든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네가 잘못한 게 맞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내가 왜 그럴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를 테면, 술자리를 나가는 문제에 대해 매번 내가 허락해 줘야 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이어졌고, 때마다 남편은 죄인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킨다는 말… 그 말이 이런 것인가? 파국으로 몰아가려고 한 건 절대 아니었는데 말이지… 하고 변명을 해보아도, 계속 이렇게 가다간 파국이 되겠구나 싶어 조율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자율이 없다는 말로 되돌아왔다.
각자의 가정에는 각자의 문제가 있다지만, 실제로 내가 자율을 억압하고 있을 수 있는 문제를 가스 라이팅으로 해결하려는 건 좋지 않다(나에게 하는 말이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상황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오려는, 한마디로 우위에 서려는 문제 해결 방식은 버려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얼마 전, 아들의 학교 참관 수업에 갔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 열리는 학부모 참관 수업이라, 엄마들의 눈이 반짝였다. 심지어 아빠들도 대거 출동했다. 그날 아이들의 책상 위에는 분홍색과 하늘색 컵이 올려져 있었는데, 책을 읽고 아이들이 함께 토론할 주제를 만들고, 찬성과 반대 표시를 컵으로 한 후,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이 이루어졌다. 한 명 한 명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대화를 나눈 아이들은 절반 이상 처음 가졌던 의견을 바꾸었고, 결국엔 거의 대등한 정도의 토론 결과가 나왔다. 충격적이었다. 이렇게나 평화적으로 토론하고,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다니. 물론, 부모님들이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치인들은 지켜보고 있어도 고함이 기본 아닌가. 배울 것이 너무 많았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던 로버트 풀검의 말처럼 아이들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간단하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들으려고 하지 않는 데서 시작했던 것 같다. 듣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관철시키려는 방법은 여럿이겠지만, 특히 나는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 방법을 택했다. 결혼생활을 파국으로 맞지 않고, 행복으로 마무리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이러한 과제들로 산을 만든다. 내가 나쁜 사람임을, 아니 부족한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고쳐 나가는 것은 어렵다. 머리로 아는 것도 어렵다. 행동은 더 어렵고. 이제 머리로는 안다는 생각이 들지만, 과연 다음 챌린지는 분홍 컵, 하늘색 컵을 든 아이들처럼 평화적으로 할 수 있을는지. 과정은 공명정대하고, 결과는 위대할 수 있을는지.
다음 싸움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