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퀴블로 로스의 죽음을 인정하기 전 5단계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을 속성으로 겪은 이후, 삶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게 마음먹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마음 가짐이 전부라고 하지만, 마음 가짐 이외의 어떤 상황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삶은 또다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 바퀴를 굴려가고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올라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수시로 고민했다.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던 날, 메모를 가득 채우던 스케줄 표를 과감히 지웠다. 혹시 안 아프게 될 것을(암이 아니게 될 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외우지도 못할계획들과 미리 빠빠이 했던 것이다. 그런데 참, 암이 아니라고 하니, 잘 정리되어 있었던 내 스케줄이 너무나 그리웠다. 돌아오렴, 내 친구야. 아이폰을 두드려봐도, 불러도 오지 않을 이름이었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내 무의식은 순간순간 잊었던 기억들을 되돌려 놓아 주었는데,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져 이전에 필요 없던 계획들을 덜어내게 된 것에 안도했다. 나는 운동과 식단, 육아와 일, 하루를 빼곡히 채운 계획들로 분노부터 수용의 단계를 빠르게 벗어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지워야 했던 나의 우울한 나날들과 진정으로 이별을 고했다. 해야 하는 일들로 가득 채워진 시간들 속에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던 내가 앞으로 해야 할 들을 채워 나가며 시간이 더디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역시 변화는 마음에서 찾아오는 것이었다.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달라진 것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하고 아이들을 챙길 때에도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약을 먹으면 이내 찾아오는 통증을 견디기 위해 운동을 하고, 운동을 하면서 ‘오늘은 출근해야지’ 다짐했다. 계획 앞에 또 다른 계획들이 줄지어 선 채 다음 차례를 외치고 있었다. 일상은 같았다. 되려 더 바빠졌다. 순간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것을 죽도록 싫어했었는데, 삶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지나가는 시간도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빨리 감기 하는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느리게 가는 시간들이 찾아왔다. 나의 꿀 같은 점심시간과 글 읽는 시간, 오전을 넘기며 오후가 다가오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일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났다. 정말 살기 싫었던 대로 다시 흘러가면 어쩌지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일해야 해, 이래야 해 하는 것은 더는 존재치 않았다. 흘러가는 것을 막을 재주는 처음부터 없었고, 그 위를 거꾸로 헤엄쳐 가던 것에서 그 위에 몸을 맡기고 배를 타는 것으로 옮겨 갔다.
더는 ‘아픈 데, 꼭 일해야 해? 돈 때문에, 꼭 일해야 해?’ 하는 따위에 말들은 남아있지 않았다. 아파도 일은 해야 하고,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은 당연했다. 먹고사는 일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고,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일 해야 하는 압박은 좋은 것이었다. 삶을 사는 원동력이고, 나는 내가 일할 수 있는 체력과 능력을 가졌음을 감사했다. 남을 도울 만큼의 여유와 애정을 갖기 이전에, 나를 도울 만큼의 사랑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여태 중요한 사람이 되고자, 마흔 전에 무언가 이뤄 내고자 아등거렸던 내가 오십도 보고 육십도 보고, 꼬부랑 할머니로 멋있게 늙어보려 해서 기특했다.
그래도 여전히 퇴사하고 싶다. 글 쓰는 의지가 불타올라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진 지금 책 읽는 시간의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리멸렬은 끝났고, 퇴사는 다시 고비가 왔을 때 해도 늦지 않는다며 잠시 미뤄 두었다. 지금은 빨리 감기의 시간과 느리게 감기의 시간을 오가며, 일하는 것에 만족한다. 더는 타의로 쉬고 싶지 않다.
브런치를 즐기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