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상태는 한 마디로 ‘계절을 못 느낌’이다.
26도에 가까운 낮 기온에도 긴 팔로 다니고, 그러다 등원길에 딸내미가 ‘엄마, 오늘이 바로 싱그러운 여름이다!’ 해야지 그제야 덥구나 싶다. 누군가 지나가는 계절도 있는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이 그런 걸까. 겨울 내내 봄을 기다렸었는데, 봄이 오지 않은 채, 여름이 왔다.
언젠가 ‘나는 왜 계절에 관한 글을 자주 쓰게 될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가는 계절이 아쉽고, 다시 온 계절이 반갑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계절에 온몸으로 반응하는 나에게 지금의 지나가는 계절은 무척 낯이 설다.
가슴팍에는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방사선 받을 자리 여기저기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글 쓰고 싶어 하는 나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런지. 늘 쪼개 쓰던 나의 시간들이 한없이 느슨해지고 나니, 이 시간을 이렇게 지나가게 두면 안 될 거 같아 안달이 난다. 세상의 아름다운 많은 것들을 모조리 눈에 담고, 사랑스러운 것들에게 사랑을 주면서 살고 싶은데, 나의 몸은 자꾸 무언가를 잊고, 놓치고, 지나친다.
길 가다가 아장아장 걷는 아가를 만났다. 엄마 손을 잡은 그 작은 손이 어찌나 작던지, 내게 내어줄 손이 없는 거 같아, 빤히 보았다. 놓치기 싫어서. 나의 눈이 부담스러웠을까, 아가는 쑥스러운지 고개를 갸웃한다. 등 뒤로 머문 시선을 거두고, 가던 길을 재촉하여 ‘읽고 쓰는 사이(자칭, TRWC-동네 언니와의 우리만의 북클럽)’에 갔다.
요즘 삶에 낙이자, 작은 원동력인 나의 소중한 모임은 계절을 못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세상의 부조리까지 이야기하는 작은 모임으로 요즘 나의 계절을 대신하고 있다. ‘읽고 쓰는 사이’는 못 읽던 책도 부단히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적당한 부담감과 화요일을 기다리며 월요일을 사는 어린 왕자 같은 마음을 갖게 하는 건전한(?) 모임이다. 쓰지 못해 안달 난 나의 마음도 ‘괜찮다, 괜찮다’ 달래주는 언니가 있어 오늘도 나는 계절을 못 느끼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런 언니에게 너무 고마워하는데, ‘나’에게 고마워하라는 말이 돌아온다. 버텨줘서, 이 시간 이렇게 미치도록 쓰고 싶어 해 줘서 고마워하라고. 얼마나 기특하냐며. 그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위해 멈춘 언니의 펜든 손을 바라본다. 그리곤 역시 사람은, 관계는 중요한 거야 생각하면서, 두 시간 만에 재킷을 벗는다. 언니는 알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금 읽고 쓰는 동안, 지나가는 나의 계절을 함께 해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나의 마음의 발끝이 땅 위에 살짝살짝 닿는 이 기분이 무엇인지. 둥둥 떠서 날아가지 않게 잡아주는 또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것에 나는 얼마나 흥분되는지.
우린 서로 아주 다른 책을 읽고, 다르게 책을 읽는다. 나는 나를 쉬게 하는 책을 아주 빳빳하게 읽고, 언니는 언니를 알게 하는 책을 줄 그어가며 읽는다. 이렇게나 다르지만, 얻고자 하는 것은 사실 같다. (언니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나를 내려놓고, 다시 삶을 살게 하는 이유에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나는 그렇기에 그렇다고 해둔다). 비록 속도도 방향도 다르지만, 결국 돌아 돌아 같은 삶을 지향하는 우리의 만남이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에어컨 바람이 차다. 한자리에 진득이 앉아 있는 게 얼마만인지. 엉덩이가 배기고, 허리가 아프다. 몸이 불편한 소리를 내니, 이제야 삶에 발붙이고 서 있는 거 같아, 기분이 좋다. 재킷을 다시 입으며, 일어날 준비를 한다. 점심 먹어야지. 제 때 할 일을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소중한 화요일을 맞는다. 오늘 처음 여름을 맛봤으니, 다음 주엔 글을 좀 써볼까. 다음 화요일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