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으로 사는 삶
학부에서 영화 공부를 할 때는 줄곧 장르 영화를 하고 싶었다. 처음 찍은 독립 영화는 작지만 큰 호평을 받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칭찬에 목마른 나는 충분히 독립영화에 올인할 법했다. 나의 감성은 메이저를 바라보는 마이너였기때문에, 늘 대중적인 마이너로써 자리를 지키는 것이 사랑받을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줄곧 하고 싶었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장르이다. 지금도 장르 소설, 시나리오를 줄곧 쓴다(누가 봐도 독립 영화 같아 보이나,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나는 왜 이토록 장르를 고집하는가. 그건 아마도 우리네 삶이 전부 ‘장르’라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욕하면서도 열광하는 막장 드라마 역시, 우리네 삶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가능하다. 욕은 할지라도, 저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인 거 같다. 그 감정의 뿌리와 사건의 발단은 전부 현실에 발을 내리고 있고, 그를 둘러싼 사건도 모두 있을 법한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이야기의 전개인 것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멜로로 누군가에게는 판타지로서만 실현되기 때문에 나는 장르를 고집한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에.
내게도 삶이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삶의 순간들이 있다. 어떤 삶은 삶 전체가 힘들고 어려운 삶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은 어쩌면 영화보다 가혹하고, 또 더 막장이고, 그래서 더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쓸 때도 ‘이런 부분은 너무 작위적이지, 너무 우연이 겹치는 거 아니야?, 너무 힘든 일만 있는데?’ 하며 이런 이야기를 도려낸다. 하지만 현실은 때론 너무 작위적이다 싶을 정도로 우연이 겹치고, 힘든 일은 몰아치듯 온다. 그리고 기쁨의 순간들은 누가 정해놓기라도 한 것처럼 고통 뒤에 아주 짧은 빛처럼 비춘다. 감히 말하 건데, 영화가 아름다운 건, 나의 삶보다 더 행복하거나 혹은 더 불행해서가 아니라, 나의 삶의 일부분인 것처럼 너무도 닮아 있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 중에 ‘Life is wonderful’이란 영화가 있다. 영화 안에 삶은 불행하지만, 적어도 주인공이 그린 삶의 단편은 아름답기에, 이 영화를 애정 한다.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고군분투하며 살고, 삶의 밝은 단편을 보며 삶을 살아낸다. 때론, 아니 자주 내가 찾은 작은 행복이 삶을 살게 하는 전부가 된다.
지금 우리는 팬데믹 상황(?)에 놓여있다. 많은 이들이 슬프고, 또 때때로 ‘소확행’을 말하며, 많은 이들이 배곯고, 또 많이들 그동안 배불렀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후회하기도, 앞으로의 삶을 불안해하기도 하면서 오늘도 우리는 오늘을 산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영화 안에서의 주인공이 삶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이렇게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 가족, 혹은 무언가를 우리 스스로 버리지 않는 다면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또 부지런히 삶을 지고 가다 보면, 끝내 우리는 빛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련다.
지금의 현실이 아무리 막장(?) 같을지라도 우리는 이 재난을 살고, 결국엔 주인공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잊지 말자, 당신이 힘들 때일수록 당신은 더욱 주인공의 삶을 살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