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은시

모자

by 김소영

눌러쓴다. 밖으로 또 안으로 향하는 나의 모진 비난을 가린다. 봐주지 않았으면 하고.

선한 얼굴을 한 늑대의 포효는 숨어들고 세상이 듣지 못하는 것은 관심 없기 때문이 아님을 모진 세상을 견디고 있음을 꾹꾹 눌러쓴다

펜에 담기는 마음이 아니기에. 부끄러운 낯빛을 땅으로 떨구고 고개를 들 수 있는 날을 기약한다. 총성이 들려도 눈을 감는 세상이다, 나 따위 어리석은 인간의 모짐으로 상처받을 이 있겠는가.

어린양은 약하지 않다. 한 몸 내어줄 용기가 내겐 없기에 늑대로 남는다. 늑대는 짐승이다. 쓸 줄만 아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움직이지 않는 죽은 자. 살기 위해서는 고개를 들고 맞서야 한다. 모자 아닌 펜으로. 펜 아닌 시간을. 시간 아닌 애정을 쓰는 인간으로. 벗어던져야 한다. 한 순간 주저함이 영원한 과거인 양. 늑대의 얼굴을 한 어린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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