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은시

빼앗긴 계절

by 김소영

나는 살집이 없습니다

나는 함께 살 사람이 없어 집 짓기를 포기하고

먼바다로 여행을 떠나려 했습니다

떠나기 전에 빈집에 이별을 고해 두고

나를 찾아오겠노라고

결혼이나 사랑 따위의 사치스러운 것들을 버리고

짊어진 짐을 어느 바다에 유골처럼 뿌리고 오겠노라고

배낭을 메었습니다

그런데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바다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동해는 나의 것이 아니고

당신의 것도 아니어서

소금 한 자루 건져 올리지도 못할 것이어서

나는 갈 곳을 잃고 여름을 탓했습니다

애꿎은 남동풍만 찾았습니다

끌 수 없는 불이라 했던 가요

빼앗긴 들에는 봄이 오지 않는 다던 시인에게

나는 이제 바다도 빼앗겨 여름조차 맞지 못하리라

탄식합니다


나는 두 계절을 잃고

추수 따위 없이

따뜻한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지성이여 나는 잃을 것이 없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야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