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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Aug 10. 2021

쉘 위 댄스?

재즈를 사랑한 뚱땡이

긴 호흡의 글을 쓰고 싶었는데, 소설 이외에 도무지 A4 1장 이상의 글을 쓰기 어려웠다. 다만, 막연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하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꼬박 한 달이 지나서야 무엇에 관해 길~게 쓰고 싶은지 정리가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내 인생의 3할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춤'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용을 전공했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미리 말하자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전공한 것만큼이나 무용을 듣고, 보고, 추고(초반뿐이지만) 살았다. 한국 무용계에서 꽤나 유명하신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서, 춤 꽤나 춘다는 동생을 둔 나는 전공자들 사이에서 취미로 춤추는 자이다. 정확히 말하면, 늘 춤추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어렸을 때부터, 어쩌면 글을 읽고,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기 전부터 무용을 보고 자랐는데, 십 대 이후로 춤을 춰본 적이 없다. 그럼 무엇을 했느냐? 엄마가 원하던 대로 공부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썩 잘하지도 못했는데, 엄마는 늘 할 수 있다면 춤추지 말라고 가르쳤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재능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그저 IMF 시대에 두 딸을 전부 무용을 가르칠 여력이 안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넌 몸이 안 됐어, 야' 하고 말했다. 상처...


그때도 지금도 변함없는 한 가지. 예나 지금이나 엄마는 몸을 본다. 오랜만에 만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쓰윽 훑고 지나가는 것을 인사처럼 하는 우리 가족에겐 '살 빠졌네'가 제일 큰 칭찬이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그놈의 살 때문에 상처 받았는지 말하면 더 아프다. 내가 십 대 이후로 춤을 추지 않은 이유도 살 때문이다.

한국 무용을 전공하신 엄마 밑에서 자랐지만, 난 재즈를 하고 싶었다. 내 인생 최고의 선생님으로 꼽는 김윤순 선생님(개명하셨다 들었는데, 내게는 영원히 이 이름이다)도 한 때는 소위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현대 무용수셨다. 선생님 춤을 보고 있다 보면, ' 아, 사람도 새처럼 날 수 있구나'라는 착각에 빠지곤 했고, 무거운 내 몸뚱이는 그저 거들뿐(?)이라는 또 다른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래서 몇 날 며칠을 졸라 작품을 받기로 했는데(무용계에서 작품을 받는다는 것은 선생님께 몇백만 원에 달하는 작품비를 내고, 의상과 음악을 맞추고, 레슨을 받으면, 나만의 작품을 사사해주시는 것이다.), 이게 웬걸 엄마는 내게 한국 무용 작품을 주셨다. 그럼 그렇지.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는 내가 몸이 안 된다고 하셨다. 내가 좀 더 끈질기게 매달렸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몇 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내 육중한 몸뚱이 한번 새처럼 날려보겠다는 의지는 어린 내게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그저 어지러운 내 머릿속에 갇힌 새 한 마리를 날려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글이라는 돈 안 드는 멋진 세계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기에 그 이후로 춤과는 영영 이별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Shall we dance?' 같은 제목으로 매거진을 발행하게 되었냐면,


몸이 근질근질하다.

20년 이상 '가만히' 살기를 해 온 내가 요즘 Tiktok 영상들을 보면서 몸이 근질근질하기 시작해진 것이다. 'Westside killer~' 하면서 시작하는 챌린지를 허공에 대고 따라 하고 있는가 하면, 태연의 'weekend' 노래를 들으며, 혼자 원, 투, 원 투 쓰리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아이고, 애 엄마야 정신 차려라... 말해도 이미 늦은 거 같다.

영화 '쉘 위 댄스?'를 보더라도(일본판, 미국판 전부), 일상에 지친 사람이 춤바람에 빠지면, 세상으로 부터 받는 손가락질은 그저 어느 멋진 영화에나 존재하는 작은 위기일 뿐, 멈출 수 없다. 바람은 멈추지 않고,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그리고 춤의 중심에서 삶을 만끽하며, 웃는다.


아직 시작도 하기 전이지만, 일단 웃어 본다.

창피해서 동생한테 배울 거지만, 일단 목차를 작성해 본다.


<쉘 위 댄스>

1. 재즈를 사랑한 뚱땡이

2. 창피해서 동생한테 배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는 이유

4. 한없는 무거움에 대하여

5. 무용한다고 살 안 빠집니다

6. 또 그럼에도 추는 이유

7. 전공자 사이에서 취미 하는 자로 남는 것

8. 취미를 전공으로 삼는 방법

9. 결국 살기 위해 추는 것

10. 쉘 위 댄스


결국, 살기 위해 추는 것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알고 있다.

자, 그렇다면 이제, 군말 말고, Shall w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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