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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Aug 11. 2021

해리포터를 다시 읽는 나에게

휴가가 없는 나에게

  터널로 들어가고 있었다. 짧은 터널을 빠른 속도로 진입하며, 마치 긴 터널을 진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묵직하게 달렸다. 여행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짧을지라도 아주 긴 듯한 여행을 가고 싶다. 사실 나는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시간 낭비 같아서 싫었고(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걸 지금에 나는 알고 있다), 지금은 사실 쉬고 싶다.  

‘남해가 그렇게 좋다더라, 한번 다녀와’


친한 친구의 사려 깊은 말에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던 , 돈이 없거나 여유가 없어서 라기보다는 여행을 다녀오기 싫어서 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면, 아주 잠깐 쉬고, 아주 오래 힘들다. 여행의 들뜬 마음은 온전히 흥분과 기쁨으로 동그랗게 뭉쳐져 아이는  눈덩이처럼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닌다. 그리고  눈처럼 희고 행복의 겨운 마음이 회색 빛이 될까   놓고 앉아 있다 보면, 어느새 쓸어야  일이 산더미다. 사랑스러운 마음을 위한 것이라 불평도 허용 되지 않기 때문에 속방귀처럼 불편하게 생각으로 소리를 대신한다(들릴 수도 있겠지만, 새어 나오는 것까지 막을 재주는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휴가가 없다.


  ‘그럼 지난주에 다녀온 데는 뭐 바다가 아니고, 뭐, 뭐니, 대체?’라고 말하는 남편의 소리가 들린다. 휴가를 다녀와서 더 든 생각이 바로 휴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기에, 어쩌면 요즘의 휴가는 소진된 우리의 삶을 더 소모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보는 영어 책한 구절에 보면, ‘I need a vacation from this vacation’ 하는 엄마의 말이 있다. 그게 바로 이런 기분일까. 나는 휴가로부터 휴가를 떠나고 싶다.

  소진된 감정, 소진된 생각, 그리고 흩어진 관계의 연속 속에서 내게 필요한 것은 메마른 감정을 채우고,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관계의 회복을 도모하는 것. 생각을 거듭할수록 필요한 것은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단순히 놀고 싶다는 생각으로 섣불리 비판받지 않기 위해서 나는 ‘해리포터를 사는 것’으로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일단 책을 산다고 하니, 마냥 노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성공한 소설을 쓰기 위한 거름이라 하니 사나운 시선만 있을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했을지라도, 아무튼 난 듣지 않았다. 그리고 나름의 데드라인을 주기 위해, 출판사를 다니는 ‘통하는’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만나서 연신 떠들어야지. 신이 났다.

  

  휴가 가기 전이 가장 행복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맞다면, 나는 휴가를 떠나는 것이 틀림없다. 결과를 알고 보게 되는 -스포일러를 당한- 글이나 영화는 한없이 불편하고, 그 말 그대로 ‘스포일(망친)’ 되기 쉽다. 하지만 결과가 완벽할 것을 알고 읽는 글은 한없이 편하고, 퍼펙트하다. 이미 알고 있는 복선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를 반겨주고, 이쯤 나올 것을 알고 있는 새로운 등장인물은 거의 친구와 가깝다. 반가워 껴안아 마지않는. 심지어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 첫 장에 나오는 더들리도 더즐리 부부가 말했던 것처럼 ‘세상 어디에도 없을’ 완벽한 캐릭터로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한정된 시간에 속도를 내는 것처럼, 빠른 시간 안에 길고 멋진(충분히 책을 이해하고 있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여행을 떠날 준비가 끝나고, 나는 묵직한 책 11권만 짐으로 챙긴다.  

  4시 신데렐라는 이만, 아이를 찾으러 가야 하지만, 휴가는 끝나지 않는다. 친구는 휴가 끝나기 전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했는데, 끝나지 않는 휴가, 이 얼마나 달콤한가.  


  휴가가 없는 당신, 나를 포함한 엄마들, 나를 포함한 워커홀릭들, 그리고 진짜로 휴가가 없는 내 남편을 포함한 많은 직장인들. 힘내자, 우리에겐 세상 스펙터클하고 멋진 휴가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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