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학교 가는 아이

평범하지 않은 시작

by 김소영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서.

텅 빈 복도에 쿵쿵쿵 발자국 소리가 울린다.


‘쿵쿵쿵, 아저씨, 문 열어주세요!!’


숙직실에서 주무시던 경비아저씨를 깨워 키를 받아 들고 문을 연다. 다시 교무실에서 우리 반 키를 가져다가 4층에 있던 우리 교실을 향해 쿵쿵 거리며 복도를 울린다. 새벽의 학교는 공포영화에서 보던 그것보다 훨씬 무섭다. 헉헉 거리는 숨을 고를 세도 없이 불을 탁 켠다. 까만 학교에 우리 반에만 환하게 불이 켜지면, 안심이 되지도 않으면서 ‘다행이다’를 연발하며 자리에 앉는다. 해가 뜨기 전까지 한 시간 남짓 엎드려 잠을 자다가 해가 뜨면 잘 잤다는 듯 일어난다. 그리곤 창가에 앉아 떠오르는 해를 보며 시를 적는다. 심심해서 적기 시작했고, 몇 달이 흐른 후에는 심심해서 운동장을 돌며 쓰레기를 주웠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좀 이상한 아이였다. 시작은 국민학교 1학년 3월이었다. (1학년 때,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뀌어 1학기는 국민학교, 2학기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너 또 어제 몇 시에 잤어? 어?’

‘학교가 장난이야? 여기가 학원이야? 엄마는 아무 말 안 하시니?’.


국민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머리를 툭툭 치며, 던진 말들이다. 친구 둘과 나는 아침마다 칠판 앞에 서서 이름 바 ‘쪽’을 당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선생님은 내게 빨간 립스틱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빨간 립스틱 사이로 쏟아져 나오는 쓴소리들과 선생님의 등 뒤로 보이는 멸시의 눈초리. 그것이 처음 학교의 인상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쁜 아이였던 것은 아니다. 다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였을 뿐. 밤늦게까지 일하신 우리 부모님은 아침 늦게까지 주무셨다. 나는 스스로 씻고, 입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도 아침에 일찍 학교를 갈 수 없었던 나는 밤을 꼬박 새우고, 신문 돌리는 아저씨가 오시는 3시 반쯤 집을 나섰다.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한 아이는 나뿐이었겠지만, 나 때는 많이들 스스로 준비해서 학교를 갔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학교를 단 한 번도 늦은 적 없고,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적도 없었다. 되려 시를 많이 지어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아침에 운동장을 돌며 쓰레기를 주운 사실이 1년 쯤지난 후에 교장선생님께 밝혀져 표창을 받았다.

그렇다. 어릴 적 나는 또라이였음이 분명하다. 달라도 너무 달랐던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 전에 ‘평범한 아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학교에서는 착하고 바른 모범생으로, 집에서는 일찍 자는 효녀(?)로 살았다. 그리고 2년 넘게 하던 새벽에 학교 가는 이상한 습관도 3학년이 되어 천사 선생님을 만나(일부러 악마를 먼저 만나게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 줄곧 했었다) 잘 고치고. 평범하게 초등학교 저학년을 마무리했다. 그 이후 나의 제일 큰 걱정은 ‘흰 우유’를 못 먹는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검은 복도를 쿵쿵 울리며 뛰던 저 시절의 나를 잊지 못한다. 과장과 가감 없이 사실 그대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아이였던 나는 저 때로 돌아가고 싶다. 검은 밤이 두렵고, 밝은 해가 찬란했던 저 시절에 나는 내가 특별한 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둠을 헤치고 용기 있게 은하수를 건너던 나의 어린 시절. 나만의 방식으로 학교에 적응해 나가던 내게로 돌아가 계속 그렇게 살라고 말하고 싶다. 겪지 말아야 할 고통은 없고, 그때 내게 주어진 만큼의 고통을 멋지게 감당해 낸 것이라고 꼭 전하고 싶다. 그리고 부끄러워 숨길 것 없이, 그렇다고 상 받을 정도로 잘한 것도 없이, 계속해 나가면 그걸로 족한 것이라고도.


시를 만난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이었던 나의 쿵쿵거리던 어린 시절. 새벽을 달리던 아이는 이후로 계속 ‘평범’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