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 같이 하는 사이

by 김소영

나름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 남편은 나보다 한 살 위라서 남편도 이른 나이에 아이 아빠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서로 아주 많이 달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결혼 초반부터 자주 다퉜다. 그러나 황당하게도(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남편은 내가 아이를 가질 때마다 입덧을 같이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원래 사이가 아주 좋은 부부나 혹은 아내가 임신기간 동안 많이 아프거나 할 경우에 남편도 입덧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사이가 좋지도, 그렇다고 내가 심하게 입덧을 한 것도 아닌데, 같이 입덧을 할 것 까지야? 안 그래도 마른 남편은 흡사 면봉처럼 몇 달을 말라갔다. 그 사이 나는 물속에서 퉁퉁 불은 하마처럼 거대해져 갔는데, 다들 와이프가 먹는 거 뺐어 먹냐며 놀리곤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의 입덧은 내 입덧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겪은 일이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대놓고 물어봤다.


‘오빠, 지금 장난치는 거지? 아니면 나 배려해서 그러는 거야?’

‘아니, 나도 죽겠어…’


참으로 신기하게도 남편은 진심으로 구역질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싫을뿐더러, 위로받고 챙김 받아야 할 사람은 나인데, 옆에서 같이 앓고 있어서 남편이 너무 얄미웠다. 그래서 나의 의지(?)로 입덧을 극복했다. 물론 그쯤 끝날 거여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저 꼴불견을 더 눈뜨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하루빨리 입덧을 끝내고, 당당하게 살을 찌웠다. 그러자 남편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살이 붙었다. 이후에 검색을 통해 이러한 현상이 ‘쿠바드 증후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남편도 아내만큼이나 큰 신체적 변화를 겪게 되어, 남성 호르몬이 3분의 1 가량 감소하면서 식욕감퇴, 요통 등의 증상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지만, 나는 그보다도 심리적 불안감, 스트레스로 인해 고통을 함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을 안 이후로는(과학적으로 진짜 가능한 사실이라는 것을 안 이후로)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게 뭐 고마운 일인가’라고 말할 사람이지만, 10년 넘게 안 친구도, 혹은 함께 산 가족도 사실 실제로 고통을 나누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혹은 사랑하는 이가 고통 속에 있을 때, 주변인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 실제로 함께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입덧은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고, 본인이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고통을 가늠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의 고통을 온전히 같이 느꼈다는 사실은 그게 호르몬 때문이든 불안 때문이 든 간에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처음보다 8년이 지난 지금 사이가 더 좋아졌다.


그때보다 지금 먹고 살기 더 편해져서도 아니고, 아이들이 커서도 아니다. 그저 함께 힘든 시간을 겪어낸 동지애 같은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보통 연애든 결혼이든 간에 첫 2-3년이 제일 좋다고 하는데, 우리는 8년이 지난 지금에야 서로가 좋다. 물론 사랑하지 않고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때의 감정들은 아이가 태어나니 콩깍지가 벗겨져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칠 때로 지칠 만큼 싸우고, 헤어지려는 생각도 여러 번 해봤지만, 결국 우리가 결혼 안정기(?)에 들어서게 한 것은 사랑의 힘(?)이다. 다시 말하면, 공감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나는 남편이 내는 화가 남편의 가정환경에서 왔다는 것을 이해하고, 안타까워했으며, 나는 나대로 나를 이해하고, 아꼈다. 그러면서 서로 본인의 이기심을 줄이고,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고 아껴주게 된 것 같다. 정말 두루뭉술한 말이지만, 결국 똑같이 힘든 시기에 서로를 탓할 것 없이, 사랑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랑으로 나가는 방법? 내가 쓰고도 잘 모르겠는 이 말은 미리 결론을 사랑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어떤 일도 결론을 짓고 나아갈 수 없고, 그 과정이 늘 중요하지만, 우리가 내린 결론은 결국 헤어짐이 아닌 사랑의 결실이었다. 그것은 상대가 보이는 작은 노력을 알아차리게 하고, 내가 먼저 눈에 보이는 노력을 함으로써 상대를 움직이게 했으며, 결국 서로의 사랑이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누군가 행동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을 한 적 있었는데, 나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이를 전적으로 공감했다. 사랑한다 말뿐인 사랑은 의미가 없었다. 결국 우리가 하는 행동의 변화, 표정의 변화, 그리고 특히 말의 변화가 우리가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스스로 인지하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들은 처음에는 힘이 들지만, 곧 노력 없이도 변화를 만드는 순간을 만든다. 조언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정말 극도로 미워하고 있다면, 그런 말투와 행동으로 상대를 대하고 있다면, 결국 당신과 그 사람 사이의 결론을 파국으로 혹은 이별로 정해놓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하는 상처의 한마디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이별을 말하게 내버려 둘 것인지, 아니면 나는 그를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하기에 우리는 결국 서로를 아낌으로써 사랑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당신에게 달렸다.


요즘 흔히들 읽는 자기 계발서나 감성 에세이들은 대부분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야 하며, 그래야만 상대방도 사랑할 준비가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도그 말은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아끼고 사랑해서 사랑할 준비를 하고 상대를 올바르게(?)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보이지 않는 상처와 고치고 싶은 단점들이 있고, 그런 나의 보기 싫은 부분까지 껴안고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아주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나도 상처 받았고, 상대도 상처 받았으니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꾸면서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상대의 잘난 점을 아끼고, 못난 점도 아끼며 결국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 하나면 나는 함께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변화들이 모여 사랑이라는 결실로 맺어질 것을 믿는다.


입덧 같이 하는 사이의 우리는 정말 언제고 남이 될 수 있는 사이이지만, 절대로 남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결론은 사랑이다. 그리고 그 결론을 내린 우리는 매일매일 사랑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어려움을 함께 한 우리 부부는 그리고 특히 나는 오늘도 결혼 생활이 힘든 모든 이들이 이별이 아니라, 한 발 한 발 사랑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