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들어봤을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시의 중요성을 말하기보다는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지를 찾는 영화이다. 이 영화가 유독 오래 머릿속에 남은 이유는 이제 정말 ‘시’가 필요치 않은 사회에 살게 된 것 같아서이다. 사실 나는 에세이나 수필을 많이 써본 경험이 없다.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나는 글짓기보다는 시를 써서 백일장에 나갔다. 대회에서 성적이 시 부분에서 더 좋게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아주 오래 고민하고 한 문장을 쓰는 그 행위가 맘에 들어서였다. 에세이는 짧든 길든 간에 다 쓰고 보면, 꼭 맘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시는 잘못 쓴 마침표나 띄어쓰기마저도 맘에 들었다. 마치 단호하게 말하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거나 높이는 것처럼 마침표 하나에 내 의지가 들어갔다. 나는 아껴 쓴 나의 말들이 시라는 글 뒤에 숨을 때, 홀딱 벗은 채 투명 망토를 쓴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나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이도 알지 못하는 이도 내 벗은 마음은 볼 수 없었다.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 그것은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을 처음 들은 임금님처럼 나를 수치스럽게 하는 말이었다. 사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일부러 쓰고 있었고,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들은 나는‘도망’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다. 다만 나는 임금님이 아니라서 생각보다 대중의 이목을 받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읽히지 않는 글을 쓰는 사람임을 인정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글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나의 필력을 떠나, ‘시’라는 장르 자체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많이 고민했다. 시에 옷을 입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태 그래 왔던 것처럼 벌거벗고 서 있을 순 더욱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확실해진 것은 내가 시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태초부터(나는 음악도 시라고 생각한다), 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함께한 나의 일부가 좀 인기가 없다고 해서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살면서 늘 하는 고민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어떻게 하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더 이상 ‘소비되지’ 않는 시를(시뿐만 아니라 모든 문학을) 어떻게 사랑받게 할 수 있는 가이다. 물론 두 가지 고민 모두에 있어 나의 노력은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결과를 따지기에 앞서 고민 없이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었다. 때때로 이러한 고민들은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작은 존재 인지에 대해 깨닫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작은 내가 큰 변화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다시금 작은 시가 말하는 큰 울림과 일맥상통한다. 비록 들어줄 이 없는 외침일지라도 누군가 듣고, 사랑해 준다면 그것만으로 내겐 큰 가치가 있다. 그래서인지 브런치에서 시로 올린 글에 라이킷 수가 많으면, 더 깊은 이해를 받은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울린다.
전에 보았던 ‘워낭소리’라는 영화에서 소는 그렇게 내내 울었다. 그 굵고 깊은 울림은 관객들도 울게 했다. 많은 소리를 담지 않았다. 많은 스토리를 담은 것도 아니다. 그저 죽음을 마주한 소의 눈을 보고, 고되고 짧았던 소의 삶과 우리네 삶을 동일시했다. ‘시’도 그런 것이다. 긴 말 하지 않고,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나는 네게 삶을 말했다. 내 민낯을 보여주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만 더 깊이 알아달라 크게 울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시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시인이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시인의 입을 통해, 그 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기 전까지 외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더 멋들어지게, 더 신명 나게, 혹은 더 가슴 아프게 노래해, 더 많은 이가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눈에 가치가 보이지 않아)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은 그 가치를 헤아릴 것 없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이 그렇고, 시가 그렇고, 그 안에 담긴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그렇다. 고뇌하고 방황하는 많은 영혼들이 시를 읽었으면 좋겠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에 특별함을 찾는 이들이 시를 읽었으면 좋겠다. 사랑하고, 행복하고, 더 사랑하는 이들이, 배고프고, 또 배고파서 슬픈 이들이 가끔이라도 시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시가 삶의 등불이 되어 어두울 때 길을 밝히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는 그런 것이니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니까.
끝으로 모든 사랑 노래가 그렇듯, 유치하지만, 애정을 담아 시를 남긴다
시
사랑을 잃고 시를 쓴다 했다
사랑하는 이가 쓰고
사랑받는 이가 써, 또 사랑한다
하늘의 달도 별도 되고
나의 티끌도 되는 너는
영영 노래로 남는다
너는 나이고,
너는 님이며,
너는 사랑이라
영영 노래로 남는다
잊히지 않을 사랑으로 영영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