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의견은 의견이 아닌가요?
지인을 만났다. 사장님은 아주 난처해하시며, 백신을 맞아야 출입이 가능하다고 말하셨다. 앞으로 자주 가는 카페에 출입이 안 될 것 같다. 이것은 비단 카페 만의 문제는 아니다. 핑계이지만, 솔직히 하루를 분 단위로 바쁘게 사는 워킹맘으로서 최근 외식이 잦았다. 그리고 이렇게나마 아이들 식사를 챙길 수 있음에 난 감사하며 하루하루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밥도 나가서 먹을 수가 없다.
그렇다, 나는 미접종 자이다.
나는 기저질환이 있어 백신을 맞기 어렵다. 동네 의사는 쇼크를 염두해 대학병원에서 대기하며 맞을 것을 권했다. 그러나 나는 주위에 기저질환을 대놓고 밝히지 않았다. 백신을 맞고 안 맞고 정도의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사회라고 믿었다. 그동안 미국의 친구들이 그들의 공동체에서는 코로나를 독감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오면서도 주변에 이를 설파하지 않은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백신을 맞고 안 맞고 결정하는 것 또한 내가 하는 일이고, 그들의 문화가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무작정 따라 하는 것 또한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나마 나의 소신을 밝히는 것은 정부와 정부부처의 전문가들이 백신을 맞으라고 권고할 수는 있지만, 백신 패스와 같은 사회 분위기 조장의 위험성이 있는 정책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백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설파한다고 해서 안전하지 않은 것이 안전 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에게는 독약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 필요치 않은 사람이 자기 의지로 백신을 맞지 않겠다 하는 것이 정말 틀린 일인가 말이다. 비슷한 예로 우리 아이들은 계란 알레르기가 있다. 주로 단백질 성분에 대한 알레르기인데, 생달걀이나 땅콩 같은 식품을 섭취했을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로 딸아이는 두 번이나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간 경험이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독감을 맞추지 않는다. 4가 접종은 가능하다고 해서 맞았지만, 불안에 떨며 대학병원에서 대기를 하며 맞아야 했고, 더 군다가 맞고 나서 큰 아이가 A형, B형 독감을 연달아 앓았다. 맞아도 걸린다고 했지만, 정말 그런 것이라면 맞추지 않았을 것이었다. 독감을 포함해서 모든 백신이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수 있고, 부작용을 감내하고 맞는 것이지만, 감기를 앓는 정도의 것이라면 맞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나의 생각이고, 나와 의견이 다른 많은 이들의 의견을 나는 존중한다. 규칙은 편한 것이고, 따라야 하는 것이고, 주위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여러 이유들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자유 의지로 결정할 문제이다. 내가 나의 의지로 나의 건강상태를 고려해서 결정하는 것이지, 사회의 룰을 따르지 않는 이를 벌 한다거나, 주홍글씨를 남긴다거나, 혹은 밥도 커피도 마실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게 되었나요? 저는 심지어 소수가 아닙니다. 학교 다닐 때에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랬고, 지금도 서로 다른 것을 조금씩 인정해 가면서 배워나가는 서툴지만 평범한 사람입니다. 백신을 맞은 이도 백신을 맞지 않은 이도, 가게 사장님도 손님도, 친구와 가족들도, 제 주변의 어느 누구도 이런 상황을 원치 않는데,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일까요? 정치적 성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종교적인 문제는 더더욱 아니고요. 제가 바라는 것은 눈과 귀를 닫고, 바른 길이기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권위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네 아버지들이 그랬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은 때론 너무나 권위적이고, 때론 너무나 가부장적이라, ‘라떼는’을 일삼고, 소통 대신에 본인이 생각하는 바른 길에 자식들을 묶어 놓으려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이 그렇고, 또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바른’ 점을 받아들이고, 여유와 농담으로 사회 분위기를 바꿔나가고 있었습니다. 해결을 하기 위한 방법이 단 한 가지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서부터 우리는 이미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시 우리는 여유와 가능성을 잃고, 닫고, 바르다 칭하는 길만을 가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맞다는 믿음도 없는데 말이죠.
제 이 별거 아닌 글이 큰 파장이 될 수도 있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흘러가 버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작은 돌을 던집니다. 소수도 아닌, 의견을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교과서에서 배운 그대로, 소리 내는 자의 소리를 들어주세요. 우리는 더 이상 막돼먹거나 혹은 바르거나 처럼 이분법적으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막돼먹었지만, 바르고, 바르지만 할 말은 하고 삽니다. 그것이 민주주의고, 제가 사랑하는 제 몸과 제 자녀와 제 가정과 제 공동체, 사회를 아끼고 발전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는 노래만 하며 살진 않을 것입니다. 시인은 때론 외치고, 때론 저항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장한 어른들이, 나의 아버지들이 우리의 노래를 손잡고 들어줄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