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사람은 결국 용서하고 만다.

행복이라는 초점

by 김소영

‘네 인생 네가 망친 거니까, 엄마한테 뭐라 하지 마라’


아이가 아파서 맡길 데가 없던 나는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로 너무 자주 일을 빠진 탓에 일을 빼기도 어려웠고, 남편의 연차도 바닥났었기에, 그래도 엄마한테는 부탁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실수를 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20분 정도 늦은 나에게, 엄마는 내가 다신 하지 말라던 그 말을 또 꺼냈다. 네 인생 네가 망친 거라는 말. 여느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말을 우리 엄마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본인의 상처만 중요한 사람이니까. 그렇게나 이기적인 사람이니까.라고 생각하고 넘기기엔 말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다.

내가 간절히 부탁했었다. 다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말은 하지 말라고. 이유를 설명할 필요 따윈 느끼지 못했다. 그저, 그 말을 다시 들으면 무너져버릴 것만 같아서, 다름 아닌 우리 엄마에게 다신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상처받은 엄마는 내게 아무렇지 않게 또 상처를 토스했다. 아이 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나)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망쳐버린 딸의 인생을 보기 싫어서, 우는 딸을 두고 나갔다.


내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 아등바등 살아도, 한 번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벼랑 끝까지 떨어진 기분이 들어도, 고이 모은 작은 행복들로 부자처럼 살았다. 그런데, 때만 되면, 엄마는 본전 생각이 난다 했다. 내게 투자한 게 얼만데, (사위에게는) 자네, 내가 얘한테 투자한 게 얼마인지 아냐며 면박을 주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엔 너희들이 행복하면 됐다고 말을 마무리 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드라마에나 나오는 악역이 내 부모이지. 나는 이렇다 할 만큼 성공하지도, 그렇다고 엄청난 주인공처럼 살고 있지도 않은데? 왜 내가 불운한 어린 시절도 모자라, 늦은 사춘기를 겪는 어른이 역할까지 하고 있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끔은 전에 보았던 ‘Stranger in fiction’이라는 영화처럼, 내가 어떤 누군가의 책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현실도피 적인 망상까지 하곤 했다. 그러다 보면 나는 정말이지, 불행을 온몸에 휘어 감고, 망해가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망해가는 인생의 수레바퀴는 소리가 없이 굴러간다. 내 인생의 핸들을 내가 쥐고 있지도 않으면서, 누군가의 간섭 또한 받기 싫고, 조언이나 조언 같은 위로는 더욱 받기 싫었다. 결국, 돈을 쓰고, 또 그 돈을 메꾸는 일로 인생을 굴릴 뿐, 애초에 행복 따윈 내 인생과는 상관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당연하게 몸을 굴렸다.


그러다, 픽. 결국 병이 왔다. 몸 여기저기가 말을 안 듣고, 잠은 오지 않고, 결국 무기력하게 또 하루. 거짓말로 그 무기력을 메꾸고, 다시 돈을 위해 또 몸을 굴렸다. 그리고 몸이 더는 말을 안 듣게 되었을 때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잠 오지 않는 무수히 많은 밤들을 글로 채웠고, 그 글이 나에게 준 피곤함으로 잠을 자고, 꿈을 꾸었다. 바닥난 행복 잔고가 조금씩 다시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넘치게 행복했던 날들로 연말의 사건을 마무리했다. 조금 부족한 것은 아이들에게 꾸어다 썼다. 대차게 퍼부은 엄마의 모진 말들은 짧게 편집하고, 딸의 눈물을 보기 싫어서, 눈물을 숨기며 뛰어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클로즈업했다. 엄마가 젊은 나이에 본인의 꿈을 포기하며 키운 나라는 딸의 눈물이 엄마의 눈물과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영화 찍냐. 뭐 이렇게 거창해. 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내 인생의 행복을 바라보는 눈은 내게 있으니까. 나는 내 인생이 망쳤다고 외치는 그 목소리 뒤에 엄마 될 겨를이 없었던 나의 어린 엄마를 본다. 현실에서는 숨어 울 곳이 없어서, 차 안에서 한 시간을 꼬박 울며, 혼자 욕도 하고, 동생도 소환하고, 엉엉거렸지만, 내 기억 속에는 미우나 고우나 우리 엄마로 그려 넣기로 했다. 결국, 엄마가 바란 건, 내 행복이려니 하고. 다시 듣고 싶지 않지만, 나의 인생에 서사를 써가는 중인 거니까. 엄마에게 내 행복을 빌려 주어야겠다.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종국에 사랑하게 될 나의 인생에 새드 한 날들은 있을지 언정, 인생을 새드 앤딩으로 마무리 짓고 싶지는 않으니까.

상처받았지만, 결국 용서함으로, 사랑하고, 행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