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스스로 가난하다 느꼈던 적이 두 번 있습니다.
아이가 아픈데, 병원비가 부족했을 때와 책을 팔아야 했을 때입니다. 네, 책 열 권 팔아도 만원도 받기 어렵지만, 팔았습니다.
영어 번역 한 장에 만원 받던 시절, 책 열 권 팔아 만원이면 아주 비싸고, 값진 교훈이었죠. 다시는 그렇게 가난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애착이 가는 무언가가 있겠지만, 책은 제게 애착을 넘어서 삶의 질을 평가하는 척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유가 있을 때, 책을 읽었고, 여유가 있어야 책을 샀습니다. 어느새 책을 사는 것은 부를 누리기 위한(?) 것이 되어 있었죠. 미녀와 야수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높디높은 책장은 제게 일종의 부의 상징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책장에 책을 채우면 채울수록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책장에 남은 곳이 없을 만큼 책을 채웠는데도, 마음이 허했습니다. 죄책감 같은 것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지는 않고 사기만 했으니까요. 그래서 책을 들었습니다. 오래도 아니고, 잠깐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찼습니다. 배가 부르다는 착각이 들 만큼이요. 이렇다 할 정답이 없는 삶은 늘 예상을 빗나갔지만, 책을 읽는 행위는 이렇듯 생각보다 빤하고 생각보다 정답입니다. 보고만 있던 죄책감이 웃으며 돌아섰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줄곧 책을 삽니다.
헌책은 헌책이라 좋고, 새책은 새책이라 좋습니다. 팔고 사기가 가능한 것은 그것이 시간이 지나도 값어치가 있단 뜻이겠지요. 나는 매길 수 없는 그 값이 대단히 좋습니다. 그럼 그저 물욕이란 거야?라고 한다면, 그렇다고 해야겠지만, 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 중에 이처럼 값을 매기기 어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사서 보세요. 작가의 이력이나 표지의 추천글만 읽더라도. 내가 이렇게 값어치 있는 물건의 주인이라는 생각 만으로도 기쁩니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다면, 파세요. 그 작은 가치는 어떤 누군가에게로 가 또 꽃이 될 거예요.
책을 사는 여러 이유 중 단연 첫 번째는 역시 책이 예쁘고, 정겹고, 나를 부르고, 사고 싶기 때문이니까요.
나는 이렇듯 책을 물욕(?)으로 사고 싶어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