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끝에 부치는 편지
오랜만입니다. 낯선 이에게 부치는 편지는 제게도 처음이라 어색함에 시작을 주저하게 되지만, 그동안 하지 못한 말들로 가득 찬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글 한쪽을 써내지 못하다가, 덜컥 코로나를 맞았습니다. 스스로 안타까워 흐르는 눈물을 감당해 내야 했던 것은 출산 이후로 처음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일주일을 꼬박 앓았는데도 아직 혈관 마디마디에 남은 떨림이 손끝까지 이어집니다. 백신을 맞지 않아서 일까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혹은 젊은 시인의 그림자처럼 시들시들하다 남편이 119에 신고까지 했었답니다. 요즘 세상에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제 손톱에 찔린 가시만큼 아픈 것도 없다는 옛말처럼, '내가 이러다 죽는구나...' 싶었던 것 같습니다. 몸을 일으킬 힘이 생긴 지 몇 시간 되지 않았는데, 글을 쓰고 있자니, 브런치가 정말 많이 그리웠던 것 같습니다. 죽 한 술 뜰 힘으로 죽 먹고, 죽 먹은 힘으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잘 이겨낸 거 기특하다, 고생했다, 위로받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저도 왜 이런 상황에서 글 한쪽을 올리지 못해 안달인지 제가 어리석게만 느껴졌는데, 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브런치에 기대는 마음이 아무래도 너무 커진 것 같아, 홀로 서지 못하고 사랑에 기대는 어리석은 소녀처럼 부끄러워집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늘이 내려앉았다가 바닥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정신 속에서도 글이 생각났다는 것입니다. 멀쩡할 때는 멀찌감치 두었던 노트북을 꺼내지 못해 한참을 만지작 거렸습니다. 핸드폰으로 작가님들의 글을 보면서 건강한 신체를 부러워하는 순간이 오다니... 하며 속없는 한탄도 했습니다. 글도 펜들 힘은 있어야 쓸 수 있는 것이 맞는 거 같습니다. 다들 건강하신가요? 진작에 물었어야 했는데, 많이 늦었습니다. 누워있으면서 어렴풋이 나마 알게 된 것은 '안녕'하냐는 말이 '밥 먹었냐'는 안부가 요즘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음을 전하는 최선의 방법이자, 위로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아플 때 서러운 마음은 사람을 조금 철들 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다들 정말 안녕하시죠? 곳곳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들로 마음이 무거울 때, 아끼는 이들이 생각날 때, 문득 잘 지내시는지 정말 걱정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에 물어준 대답에 대한 대답으로 안부를 묻습니다. 세상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전쟁 통에 피어나듯이 당신의 인생 밭에 작은 싹은 틔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늘의 저는 '세상의 고결한 것들은 죽은 자들의 나라를 건너 우리에게 이른 것'이라는 작가의 말을 이해합니다. 코로나라는 재앙의 끝에 서서 우리는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전쟁의 폭격 속에서- 마스크를 쓴 소녀들의 움츠림에서 잠들어 있던 인류애의 깨어남을 느낍니다. 비극적 이게도 세상의 갈라진 바닥 틈새에서 말없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비록 늦었다 할지라도, 늦었기에 들을 수 있었던 외침을 오늘의 나는 듣습니다.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희망의 씨앗이 비록 작을지라도, 당신에게 가 닿기를 바랍니다. 나는 당신에게 받은 위로로 당신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안녕하시기를. 부디, 우리에게 이른 이 시대가, 이 시대에 이른 우리가, 모두 안녕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