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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Mar 10. 2022

일상을 찾아 준 책 한쪽

  ‘엄마, 어제 엄마 아파서 못 읽은 책 읽어줄 거지?’


  코로나가 휩쓸고 간 집안에는 일상이 쉽게 자리잡기가 어렵더군요. 격리 기간이 끝난 후에도 아이들은 집에 머물고, 저는 좀처럼 침대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상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침 일찍 눈 뜨자마자,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의 성화에 찌뿌둥한 몸을 어렵사리 일으켰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아침 먹고 읽어줄게…’라고 대답하고는 부랴부랴 투표를 하러 갔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나랑 걷고 싶었구나?’ 하며 손을 내미는 남편에게 ‘좀 그런 것도 같고…’하고 웃어 보였습니다. 10년 차에 가까워서야 신혼을 맞이한 부부가 우리만은 아니겠지요?

아이들 줄 샌드위치를 남편에게 맡기고, 병원에 가서 긴긴 대기 끝에 수액을 맞았는데, ‘폐가 많이 부어있네요… 꾀병 아니세요’라는 의사에 말이 머리맡에서 계속 빙빙 돌았습니다. 보고픈 친구들에게 괜히 연락을 해서, ‘나 꾀병 아니래, 진짜 아프대’하며 엄살도 피워보고, 은사 같은 언니가 보내준 홍이삭의 ‘지금은 아무것도 몰라도’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일상은 이렇게 수다를 떨어야 돌아오는 것을 보니, 아줌마가 된 것이 새삼 실감이 납니다.


  꽤나 시간이 지난 후에 집에 돌아왔더니, 아이가 읽고 싶다던 책은 어느새 10권이 되어 기다리고 있더군요. 읽고,  읽고, 아무리 아이 책이라도   시간을 들여 책을 읽었더니, 링거로 반짝했던 기운이 바닥 밑으로 사악 사라져 버렸습니다. 약을 먹고 다시 침대에 누웠습니다. 너무 오래 누워있어, 잠이 오지 않겠지 싶었던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시간을 넘게 낮잠을 잤습니다.  사이, 설거지도 하고, 머리도 깎고  남편이 ‘신생아야?..?’ 하고 핀잔을 주더군요. 그러면서 문을  닫아주는  츤데레 같으니라고. 사실 이렇게 낮잠을 자는 것이 일상은 아니었지만,  밖에서 아이들이 블록 놀이를 하고, 남편은 뚝딱뚝딱 무언가를 하는 소리가 들리니, ‘ 이제 일상이구나하는 안심이 들었습니다. 몸을 일으켜 저녁을 차리고, 잠자리에 누워 다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여전히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일상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울었던 시간들이 잠자리 독서와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벽에 부딪히던 수많은 시간들을 알아주는 이들의 기도에 편안히 잠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이 기적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기적 같은 하루가 저물고, 곧이어 평범한 일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일상을 꾸리던 저였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대상에게 짜증을 내고 한탄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책한 쪽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다는 건,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에게, 또 제 자신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읽어주는 책 한쪽이 펜데믹을 잠재우고, 일상으로 우리를 옮겨주었으니까요. 축복 같은 하루를 선사해준 나의 아이들과 크리스티앙 보뱅과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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