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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Jan 23. 2022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이유

내 트라우마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손가락이 많이 부었다. 화장대에 올려놓은 반지는 구르다 떨어져 두어 개 사라지고, 남은 것들은 크게 소중한 것은 아니었다. 끼지 않는 반지는 쓸모없는 것일 뿐.

  동그랗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고양이나 나나 마찬가지이나, 그들처럼 매 순간 뾰로통하기는 쉽지 않아서, 잃어버린 반지는 잊었다. 적어도 잊었다 생각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퉁퉁 불어서는 거실에서 노는 아가를 배경으로 멍을 잡고 있는데, 오물 거리는 아이의 입 속으로 나의 손가락이 정신보다 먼저 반응하여 쑤욱 들어갔다. 나온 것은 맞지 않는 반지였다.

  이런, 제길.

  잃어버린 소중한 것은 늘 이렇게 문제를 일으킨다. 덮어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잊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해봐도 이미 아찔한 순간들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꿈이 무의식의 반영이 확실한 것은 이러한 순간들은 데자뷔로 왔다가, 리플레이로 또 남는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행동들은 그만두어야 한다. 그것은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벼랑 끝으로 아찔하게 나를 몰아세운다. 때론 떨어트리기도.


  손가락이 부은 것.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찾지 않은 것. 아이가 놀고 있는 것. 눈에 보이지만 의식하지 않은 것. 일부러 무시한 것. 그 이면을 봐야 한다. 그리고 후회는 없어야 한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 글의 절반 이상이 나의 트라우마들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가는 동안, 나의 무의식은 끊임없이 이야기해 온 것 같다. 더는 덮어두지 말라고.


  나의 트라우마 기록의 이유는 그 순간을 다시 보고, 가시화하는 데 있다. 공포의 감정만 남은 순간을 다시 보고, 그 순간에서 배울 것을 찾는 것. 그리고 나를 트라우마의 굴레에서 슬슬 놓아주는 것. 매번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내 글에게 이 글은 이미 끝을 알려주고 시작하는 것 같아, 시작하기 전부터 속이 시원하다. 불편할 수도, 상처를 후벼 파는 행동이 될 수도 있지만, 슬슬 작별하기 위해서. 끝이 있는 시작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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