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행버스 기사님과 스무 살의 '나'

"제가 학생증을 맡기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꼭 돈을 갚을게요."

by 이생

대학교 때, 하나뿐인 이모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셨다.

이모는 결혼하셨지만, 자식이 없으셨다.

그래서일까. 언니들의 기억 속엔 이모와 보낸 시간들이 많이 남아 있다.

나도 이모네 집에 가서 잤던 기억과 이모가 화장을 지우고 세수하던 모습, 그리고 맛있는 음식들을 사가지고 오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런 이모가 유방암에 걸리면서 몸이 눈에 띄게 야위어 갔고,

어느 가을날,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해도 아무도 받지 않았다.

당시 휴대전화가 대중화되기 직전이라 집에 없을 때는 쉽게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다.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언니가 다니던 직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모님이 돌아가셨다고 병원에 갔는데, 몰랐어요?"

언니의 직장 동료 말에 공중전화를 걸고 난 후, 떨어지는 동전처럼 내 가슴에도 덜컹거리는 무언가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교에서 집까지는 차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기사님한테 다음 직행버스를 물어보니

막차 시간과 이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이 맞지 않는다고 하셨다.

결국, 나는 직행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집에서는 내가 가는 줄 모르고 있었고, 차편이 불편하기 때문에 엄마는 아마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집으로 가는 중간 지점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정류장에 앉아 있었는데,

버스 기사님들과 터미널 직원분들이 함께 걱정을 하시면서

집 방향으로 가는 트럭을 타고 가는 것은 어떠냐고 말씀하시면서 모두 퇴근하셨다.

그런데 내가 타고 온 직행버스 기사님이 나에게 택시비를 빌려줄 테니 택시를 타고 가겠냐고 말씀하셨다.

시간은 8시 30분이 넘어서고 있었고,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여학생 혼자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가는 건 걱정이 되긴 하는데."

기사님은 고민하시다가,

"그럼, 내가 태워다 줄까?"

"네? 기사님이요?"

나는 그 순간, 믿을 사람은 그 기사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님은 아는 형이 이곳에 살고 있는데, 전화해서 차를 빌려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고 하셨다.

"근데, 그 형이 오려면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하는데, 괜찮니?"

"네, 괜찮아요."

"그럼, 먼저 밥부터 먹자."

사실, 다른 사람과 밥을 먹는 것에 많은 불편함을 느끼는 성격이었지만, 남은 시간을 가장 불편하지 않게 보내는 방법은 저녁을 먹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사님은 나를 기사식당에 데리고 가셨고, 된장찌개를 시켜 주셨다.

"난, 아까 여기 도착해서 바로 먹었어."

"감사합니다. 제가 학생증을 맡기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꼭 돈을 갚을게요."

난 학생증을 기사님한테 내밀었지만, 기사님은 웃으면서 다시 넣어두라고 하셨다.

기사님은 오늘 내가 타고 온 버스를 내일 아침 다시 운전해서 다른 곳으로 가시기 때문에

저녁엔 시간이 괜찮다고 하셨다.


1시간이 흐르고, 기사님이 아는 형은 10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차는 1톤 트럭이었다. 기사님은 나에게 뒷 좌석에 타라고 하셨다. 난 뒷좌석에 앉아 언니에게 전화할 잔돈을 만들기 위해 샀던 막대사탕을 기사님에게 건넸다.

"제가 가진 건 이것밖에 없어요. 드세요."

기사님은 웃으시면서 그 사탕을 받으셨다.

집까지 1시간 30분 정도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기사님이 좋아하는 여성분이 있으신데, 그분한테 솔직하게 이야기를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와중에 꼭 솔직하게 마음을 전해보시라고 말했고, 기사님은 알겠다고 하셨다.


집이 있는 지역으로 도착했고, 거기서 택시를 타고 간다고 말했다.

기사님은 내려서 택시를 잡아 주셨고, 밤이면 택시비를 더 받을 수 있다고 하시면서 2만원을 건네셨다.

그때 당시 용돈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차비가 빠듯해서 죄송했지만 꼭 갚겠다는 마음으로 그 돈을 받았다.

그리고 트럭에서 내리기 전에 기사님한테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했기 때문에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집에 도착했고, 나는 엄마에게 매우 많이 혼났다.

낯선 사람의 차를 타고 왔으니, 엄마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모 장례를 다 치르고, 학교에 돌아가 기사님이 적어준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지만,

없는 전화라는 메시지만 반복해서 들려왔다.


나는 기사님을 만날 수 없었고,

빌려주신 돈도 돌려드릴 수 없었다.

정말 감사했다는 말도 전할 수 없었다.


나를 데려다주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가느라

많이 피곤했을 기사님.

그냥 그날, 직행버스를 탔던 한 승객을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신 그 기사님의 얼굴은 잊어버렸지만,

그 마음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다.


그날 이후,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면

기꺼이 도와주려고 애쓴다.

그 방법이 내가 기사님한테 빚을 갚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며.

그리고, 그 이후 한 동안 그 기사님이 좋아하는 그 분과

좋은 인연이 되기를 기도했었다.


어딘가 행복하게 잘 지내실 그 가시님이

늘 행복하시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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