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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날개를 말려야 하는 시간

by 이생

아침 일찍 봉침을 맞으러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맞아야 효과가 있는데 시간을 내지 못했다. 근처에 봉침을 놓는 곳이 없어서 4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한다.

봉침은 천연 스테로이드제 효능이 있다고 한다. 지난번 청량리역 근처에서 맞았던 봉침은 너무 강해서 손이 퉁퉁 부었었다. 턱관절에도 맞았었는데 그 붓기 때문에 얼굴도 약간 부어서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인 줄 알고 놀랐다.


오늘 봉침을 맞으러 가는 한의원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강하지 않게 놓기 때문에 그런 큰 부기는 없다. 맞고 나면 왠지 편안한 느낌이 드는데, 지금은 류마티스 약을 복용한 지 11시간이 지난 시점이므로 약의 효과가 최대치이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통증의 정도를 보고 봉침의 효과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스테로이드제를 한 알 반을 먹다가 지금 한 알로 줄인 시점에서 조조강직이 조금 더 강하게 오고 있고 손가락과 엄지발가락 붓기도 있으니 한 번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일주일에 3회 정도 한 달간 꾸준히 맞아 보려고 한다.


봉침을 맞고 집에 와서 뜨겁게 달구어진 황토 위를 맨발로 걸었다. 발등 부분에 침을 맞았기 때문에 밴드를 붙이고 걸었다. 무릎만 더 괜찮다면 세 시간을 걸어도 좋을 것 같다. 그저 편안한 기분이 든다. 땅 저 깊은 곳에서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무릎에 무리가 가면 안 되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서 우산을 쓰고 책을 읽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하다 보니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타닥타닥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하늘을 바라보니 저기 멀리서부터 비구름이 몰려와서 비가 쏟아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내가 있는 이곳까지는 비가 순간적으로 내리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시간차를 직접 보니 너무나 신기했다. ‘우리에게 닥칠 비극도 저렇게 미리 알아채고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내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눈치 채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사실 올해 3월 초까지만 해도 내가 엄청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갑상선암을 진단받고 약을 먹고 있지만, 감기도 잘 걸리지 않고 운동량이 많아도 별로 지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줄넘기 1000번은 기본이었다. 동네를 두 시간 달려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처지가 되니 건강했다는 착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건강하다는 착각, 나이 들어서도 건강할 것이라는 착각, 잘 관리해도 안 되는 부분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 같다. 이렇게 아프고 나니, 몸이 아픈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병을 얻게 되는 것이 물론 자신이 관리를 소홀히 하는 부분도 있지만, 의도치 않게 아무리 신경 쓴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부분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인생은 의도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힘든 법이라는 것도 알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조깅을 하고 난 후, 시원한 물 한 잔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안다. ‘그렇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앞으로는 그렇게 무리하게 뛰는 행동에 제한이 오겠지만, 뛰지는 못해도 걷는 것에 제한이 없이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찰리 채플린은 비극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이 깔려 있다고 했다. 진정한 비극은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이다. 일어서서 다시 또 다른 일상을 설계해야 한다. 찾아보면 주변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비가 멈추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저녁이다. 3·7·8 호흡법을 해 본다. 그리고 살짝 입 꼬리를 올려 미소 지어본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도 웃어버린다. 그리고 연쇄적으로 내 마음이 열린다. 상쾌한 저녁 공기가 내 몸 깊숙이 들어가 나를 위로한다.

새도 날아가다 날개가 젖으면 말릴 시간이 필요하다. 나에겐 날개를 말릴 시간이 필요한 순간인 것이다. 날개가 곧 마르면 다시 희망찬 일상 속으로 녹아들 것이다. 다른 사람을 한층 더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세상을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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