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 나에게 우울이 찾아왔다

by 이생

유난히 오늘 아침 조조강직이 심했다. 얼마 전 무릎에서 물을 25ml 빼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후, 2~3일은 마치 류마티스 환자가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는데 그 효과가 떨어졌나 보다. 그리고 저녁에 먹던 약을 아침에 복용하면서 가볍던 몸이 더 뻣뻣했다.

아침을 먹고 약을 먹으면 4시간 후에야 몸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유난히 조조강직이 심해서 오전에 소파에 누워 책을 보다가 영화 한 편을 봤다. 사실 오늘 아침 유난히 몸이 불편해서 그런지 갑자기 우울한 감정이 찾아왔다.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은데 이렇게 활동에 제한이 생기니 마치 도태되어 버린 번데기같이 비참한 기분도 들었다. 뭔가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영화를 검색하다가 <3일의 휴가>를 선택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3일 동안 딸과 보낼 휴가를 얻어 내려오는 이야기다.

마음대로 살아질 수 없는 다양한 현실들 중의 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우울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영화를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딸이 나를 보고 우는 거냐고 물었다. 사실 나 때문에 울고 싶었는데, 딸에게는 영화가 슬퍼서 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가 끝나고 딸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콩나물을 씻으면서 눈부신 창밖을 보니 괜스레 눈물이 고여 왔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해 졌지.’ 나약해지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가면역질환이라는 뚜렷한 원인과 해결이 없는 이 긴 싸움 앞에서 생을 포기해 버렸다는 연예인들의 이야기와 유튜브 댓글에서 가슴 아팠던 댓글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선택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콩나물이 익어가는 냄새 뒤로 딸이 콩나물을 자신이 같이 버무려 주겠다면서 웃었다. 손가락이 아파서 버무리기 힘든 엄마를 도와주려는 딸을 보면서 눈물을 털고 웃어 버렸다. 웃어 버리니 순간 몰려왔던 슬픔의 구름이 순간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맛있게 익은 콩나물에 소금과 고춧가루, 마늘, 빨간 고추 약간, 파 송송, 참기름을 넣어주니 딸이 비닐장갑을 끼고 야무진 손으로 콩나물을 버무린다. 엄마한테 간을 보여주면서 자신도 콩나물을 한 입 넣는다. 눈이 번쩍 뜨이는 표정으로 웃어 보이니 내 마음이 한결 환해진다.

뒤뜰에서 따온 호박잎을 찜기에 찌고, 고추를 씻고, 단호박을 삶고, 아침에 먹었던 닭개장을 데웠다. 나는 어제 고기 국물을 먹으니 통증이 더 있는 것 같아 그냥 다양한 야채와 메추리알 장조림을 먹기로 했다. 노란 단호박을 먹고, 보슬보슬 털이 나 있는 호박잎을 된장과 함께 싸 먹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한시름 놓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발가락이 많이 풀려서 뜨겁게 달구어진 집 앞 뜰에서 우산을 들고 맨발걷기를 했다. 태양으로 달궈진 황토에 발이 닿으니 뜨겁다기 보다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지구 저 내부에서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오늘 본 영화에서 ‘기억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연료’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 내부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것 또한 외부의 힘보다 우리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때로는 눈물이 넘쳐흐르겠지만, 삐걱거리면서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인생은 원래 흐리다가 비도 내리고, 천둥, 번개도 치고, 다 태워버릴 정도로 태양도 뜨겁게 내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람도 불어올 것이다. 나를 지키기 위한 내면의 힘을 더 키워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뜨거웠던 태양이 지고 서늘한 바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