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만약에 엄청 편안하고 좋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서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오늘 봉침을 맞으러 갔다가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있는데 갑자기 어제 저녁 아들의 말이 떠올랐다.
“음, 그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아들이 자신보다 여섯 살 어린 동생에게 가면서
“엄마가 우리 없이도 살 수 있대.”
난 아들의 의도를 읽고, 황급히 말했다.
“농담이야.”
태어난다는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바람일 것이다. 류마티스 환자가 되고 나서 통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그저 편안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제는 그냥 그렇게 넘겼는데, 오늘 침을 맞고 누워있는데 불현듯 아들의 말이 떠올랐다. 아들이 엄마가 류마티스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지 걱정하는 마음에서 엄마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를 걱정하는 아들 마음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턱관절, 손가락, 무릎, 발가락에 온통 침을 꽂고 있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가락에 침을 꽂아두어서 눈물을 닦지 못하고 있는데 간호사분이 침을 빼러 들어오셨다. 아마도 침이 너무 아파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생각하셨기를 바랐다.
아들이 원했던 답을 했어야 하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공간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봉침도 맞고 열심히 버티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오늘 손가락이 가라앉은 것을 보고 ‘봉침을 맞으러 가지 말까?’ 고민하다가 어렸을 적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등교했던 것처럼 이틀에 한 번, 일주일에 3일 정도는 꾸준히 봉침을 맞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버스에 올라탔다.
스테로이드제는 염증에 잘 반응하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염증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언제까지 스테로이드제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봉침의 항염작용을 믿어 보기로 했다. 사실 눈에 띄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제자리걸음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더 부어 있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는 계산할 수 없다. 벌이 부디 내 몸속의 염증과 잘 싸워주길 바랄 뿐이다. 침을 맞고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근처 베이커리 카페에 가서 보리수 열매 차를 한 잔 시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을 샀다.
버스가 도착하고 읽던 책을 펼쳐서 읽다 보니 갑자기 어두워졌다. 터널이다. 희미한 불빛이 있지만,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귀의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버스의 덜커덕 거리는 소리, 바람이 스쳐가는 소리가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하던 일을 애써 하려고 마음 졸이지 말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른 감각 기관을 이용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숨 고르기를 하고, 마음을 집중하고 이 터널에서 멈추지 말고 터벅터벅 저 터널의 끝을 향해 걸어가면 된다. 걸어가다 보면, 나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고, 그 속에서 어쩌면 내가 놓칠 뻔했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터널의 끝을 나설 때, 그 찬란한 눈부심으로 환하게 웃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니 사람들이 제각기 자신의 일들을 해내느라 분주한 모습이 보인다. 세탁소 아저씨는 여느 때처럼 옷을 열심히 다리시고, 미용실 아저씨는 손님 머리를 다듬느라 연신 어깨를 들썩인다. 하나, 둘, 아파트에는 불이 켜지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방학인데도 학원에서 끝나 버스에 올라탔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만을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이 삶을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삶을 지켜내야 하는 이유가 되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터널 안에 있더라도 안 보인다고 주저앉지 말고, 눈을 감고 차분하게 있다 보면 그 어둠에 익숙해져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끝이 없는 터널은 없다. 지나간 과거를 뒤로하고, 현재의 소중함을 발견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한 번씩 꼭 안아주고 빵을 나눠 먹었다. 함께 빵을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빵을 나눠줄 수도 있고, 함께 하길 원하는 사람과 빵을 함께 먹을 수도 있다. 힘겨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서로에게 더 친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 쏟아지더니 귀뚜라미들이 한층 더 크게 울어댄다. 내 마음속에 귀뚜라미 한 마리가 사는 것처럼 가슴이 설레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