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말이라 가족과 함께 숲길을 걸으러 갔다. 10시쯤 되었는데도 사람들로 붐볐다.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우리도 신발을 벗어 한쪽에 모아두고 맨발로 걸었다. 밟히는 흙 촉감이 시원하고 너무 좋았다. 마치 바닷가 모래를 밟듯 촉촉했다.
숲길이라 그늘이 있어 수분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키가 큰 전나무 숲길을 맨발로 걸으니 마치 엄마의 품 안에서 있는 것처럼 온전한 나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나간 후회,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오로지 발밑에서의 흙 촉감과 코로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만 느껴질 뿐이었다.
아이들도 맨발로 걸으면서 다람쥐도 구경하고, 식물도 관찰하면서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편안함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1시간 정도 걷고 난 후, 근처에 들러 식사를 했다. 함께 사진도 찍으면서 단순한 식사도 좋은 추억으로 만들었다.
매일 먹는 세끼 식사를 의무감이 아니라 함께 마주 보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 기억한다는 것은 마법 같은 일이라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기적 같은 순간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은 뭘까?”
어느 영화에서 주인공이 사라져가면서 남긴 말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 다르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선택할 수 있다. 병을 얻고 나서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소중하게 채울까 생각한다.
작은 것 하나라도 내 의지대로 만들어 가고 싶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예전에도 물론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을 더 많이 표현하고 소중한 경험을 해나가고 싶다.
긴 여행을 가서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 아니더라도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가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소중한 시간에 대한 기억을 사진으로 남기고 인화해서 식탁 옆벽에 한 장씩 붙여두어야겠다. 휴대폰에 많은 사진들이 있지만 그냥 휴대폰 안에 저장만 해두지 않고, 평소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둠으로써 한 번씩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리고 또 다른 소중함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약속했다.
브로니 웨어의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에서 그녀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환자들을 기록했는데 그중에 한 남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일에 매진했던 사람이다. 아내는 자식들이 다 성장한 후에 남편과 단둘만 남았고, 일만 하는 남편 때문에 너무나 외로워서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자신과 함께 여행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주길 바랐다.
하지만, 남편은 일에 대한 성취감을 중요시했던 사람이었고, 아내의 간절한 부탁을 무심히 넘겼다. 그러다 아내가 너무나 간절히 원해서 승낙하지만, 하던 일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1년 후에 그만둔다고 약속한다. 아내는 그것만으로도 너무 기뻐해서 1년 후에 여행 갈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몇 개월 후, 아내는 속이 이상함을 느끼고 병원을 예약한다. 결국 아내는 1년이란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약속한 시간 몇 달 전에 사망하고 만다. 남편은 결국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아프기 전의 아내가 있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아내가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여행도 할 수 없었다.
그제야 남편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고 생의 마지막 순간, 가슴 아픈 후회를 해야만 했다. 그 남성은 자신을 돌보는 그녀에게 이 말을 남긴다.
“가족들 말고 내가 이 세상에 뭔가 좋은 것을 남길 수 있다면, 이 한 마디를 두고 떠나고 싶소.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고,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 일이 인생에 전부가 되게 하지는 말 것.”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진정 소중한 존재에게 그만큼의 인생의 답을 들려주지 못한다. 상대에게 자신이 얼마나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지 알면서도 사실 실천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그것이 인생의 정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들려줘야 한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에게 너그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나 자신도 표현하는 것에 많이 서툴지만 오늘부터 조금씩 노력해서 나의 진심을 들려줘야겠다. 가족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가는 것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