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3번, 진시헌 면회"
오늘도 당연히 면회를 온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박교도관을 따라 복도 끝 모퉁이를 돌아보니 선반 위에 책 세 권 놓여 있었다. 박교도관은 내게 책을 건네면서 이젠 선생님이 주고 가신 돈으로 책을 다 샀다고 말했다.
"그동안 감사했고, 죄송했어요."
"아니, 사실 나도 책을 읽은 지 오래됐거든. 네 덕분에 요즘 어떤 책이 나오는지 찾아보면서 가끔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기도 했어. 물론 빌린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국어교사인 내 친구에게 이런저런 좋은 책 얘기도 들었고."
친구 얘기를 꺼내면서 박교도관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에겐 친구의 존재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을게요. 저 같은 애는 이런 배려를 받아선 안 되는 거였는데요."
나는 고개를 숙였고, 박교도관은 어깨를 두 번 가볍게 두드렸다. 박교도관은 얼른 들어가자고 눈을 찡긋했다.
나는 책을 들고 조금이라도 더 천천히 걸어가기 위해 애를 썼다. 같은 방을 쓰는 애들은 분명 내가 너무 빨리 면회를 끝내고 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는 지난번처럼 예상치 못한 말들을 만들어 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천천히 걸으려고 해도 내가 바라던 시간에 가까이 갈 수는 없었다.
철커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 방에 들어왔을 때, 애들은 마치 오늘 나를 처음 보는 것처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거 봐. 표정의 변화가 없잖아."
나는 순간 무슨 말인가 싶어서 375번을 쳐다봤다. 분명 나를 향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생각해 봐, 누군가를 면회를 하고 오잖아. 그럼 표정에서 확 티가 나거든."
궁금하다는 식으로 658번이 물었다. 더욱 재미가 붙은 375번은 말을 계속 이었다.
"부모님이나 그리워하는 사람이 찾아오잖아. 그럼 마음이 무거워지거든. 그리고 아무리 못된 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생기거든. 그러면서 그래도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에 뭔가 여러 가지 감정으로 꽉 찬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얼굴 표정이 돼서 들어오지."
피식 웃으면서도 658번은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진실을 더 알아내야겠다는 식으로 엉덩이를 옮겨 375번에게 더 바싹 다가앉으며 물었다.
"그럼, 정말 싫어하거나 과거에 상처를 입혔던 사람이 면회를 왔을 땐 어떤 표정이야?"
375번은 자신이 점술가라도 된 듯한 심오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벌려 이를 한껏 드러내더니 말했다.
"뭐랄까. 약간 비웃은 표정이지. 당신이 와도 내 인생은 아무런 타격감이 없다는 듯한 자신만만한 표정. 그런데 이건 자신감과는 조금은 달라. 지난날 좋지 않은 일들 때문에 화가 나지만, 그건 절대 용서해서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 같은 거지."
진지하게 듣던 658번이 이마에 잔뜩 나 있는 여드름을 터트리며 말했다.
"야, 어렵다. 넌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하냐. 난 네가 말해줘도 외워서 못할 것 같다. 이 자식, 말이 술술 나오는 거 보니, 완전 사기끈 체질인데."
375번은 손바닥을 쫙 펼쳐서 658번 여드름을 모두 터트릴 기세로 이마를 찰싹 때렸다. 658번은 짜증 나면서도 웃으면서 뒤로 넘어지는 시늉을 하더니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면서 나를 응시하면서 375번에게 물었다.
"그럼, 표정의 변화가 없다는 건 무슨 뜻이야?"
375번은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비웃는 표정으로 미리 결과를 예측했다는 듯이 말했다.
"지난번도 그렇고, 이상했어. 박교도관이 부르고, 673번이 나갔잖아. 그리고 기껏해야 10분도 못 채우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이건 무슨 얘기겠어?"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 왔다는 얘기지. 무슨 얘기야."
135번이 쓸데없는 소리로 관심을 끄는 375번이 꼴사납다는 듯이 빈정대는 말투로 받아쳤다. 375번은 내 심장을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아주 기분 나쁘게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전에 내 책에 물을 쏟았을 때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틀렸어. 그럼 표정의 변화가 분명히 있었겠지. 얼굴은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표현하거든. 우린 아직 마음과 얼굴 표정을 따로 놀게 컨트롤할 능력이 없어."
375번은 한번 기분 나쁘게 웃어버리더니 진실인 양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673번, 네가 말해 봐. 누가 왔었는지."
나는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몸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아마 375번은 내 눈빛을 보고는 자신이 이겼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때 내가 박교도관에게 받은 책을 뒤적거리던 183번이 말했다.
"누가 왔다가긴. 673번 담임선생님이지. 이렇게 책 받은 거 보면 몰라?"
375번은 아주 답답하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다 틀렸어. 673번은 알고 있어도 절대로 말하지 않겠지만, 난 알고 있거든. 673번을 면회 온 사람은 바로 박교도관이야."
방에 있던 애들이 모두 웃느라고 침을 여기저기 튀겼다.
갑자기 자신이 예상했던 반응과 너무 다르자 375번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날카롭게 응시하며 말했다.
"673번, 맞지? 내 말이? 네가 말해봐."
나는 당황한 내 눈빛을 감추기 위해 박교도관이 내게 건네준 책 중, 표지가 단단한 책의 첫 장을 펼쳤다. 마치 책의 저자를 읽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내 심장은 법정에서 판결을 받던 그 자리에 서 있던 것처럼 너무나 불안했다. 375번에게 또다시 당하는 상황을 만들어선 절대 안 된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375번이 말한 상황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375번은 자신이 내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인 양 착각할 것이며, 그의 혀에 놀아난 다른 애들도 375번의 기세를 등에 업고 나를 아무런 이유 없이 비웃고 괴롭힐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375번이 찍은 모욕적인 낙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그것은 이곳에서 더 이상 내게 버틸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내가 그의 모욕을 당할 아무런 타당한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183번이 웃으며 다른 책을 들춰보았다. 그 모습은 관심을 드러내는 듯 자연스러웠다. 그러는 사이, 375번의 날카로운 관찰력은 마치 허무하게 끝나는 난센스 퀴즈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조용히 사라졌다. 그런데 방 안의 다른 애들의 표정처럼 난 자연스럽지 못했고, 여전히 심장은 거칠게 뛰고 있었다. 심지어 심장이 너무 커져서 마치 입을 타고 혀 밖으로 넘어올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설마 그런 상황이 펼쳐진다 해도 절대로 심장을 입 밖으로 꺼내놓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
"673번, 나 이 책 먼저 읽어도 돼?"
183번이 책을 펼쳐보다가 살짝 미소를 머금고는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떨리는 목소리로 내 마음을 들켜버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고맙다. 빨리 읽고 줄게. 나도 한때는 책을 열심히 읽긴 했거든."
183번은 마치 쓴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잊으려는 듯이 애써 미소 짓더니 책을 펼쳤다.
방의 분위기는 내가 박교도관에게 책을 받아온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갔지만, 이제 아무도 면회 오지 않는 점을 375번은 이상하게 여기고, 나를 계속 추궁할 것이며, 나는 어떻게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방법을 생각했지만, 더 이상 좋은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박교도관과의 면회 사건 이후로, 일주일이 지나도록 심장이 갑자기 심하게 뛰는 듯한 증상이 자주 찾아왔다. 한 번 심하게 뛰기 시작하면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음식물도 삼키기 어려웠다. 얼굴 표정조차도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내겐 늘 불리한 상황만 찾아오는 듯했다. 아무리 크게 숨을 쉬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해도 내 의지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내 마음이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저 새끼, 왜 똥 씹은 인상을 하고 있냐?"
375번은 오로지 나를 관찰해서 시궁창에 빠뜨려야 직성이 풀릴 것처럼 또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거칠게 뛰던 심장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목은 침 한 방울도 삼키지 못할 정도로 꽉 막혔다. 소리도 밖으로 내뱉기 힘들었고, 목의 핏줄이 살갗으로 다 터져버릴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잠을 자다가 가위에 눌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도 모르게 '엄마'를 목 터져라 부르며 깬 적이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를 그렇게 목이 터져라 부르고는 나도 모르게 누워서 한참을 울었었다.
차라리 가위에 눌린 것이었다면, 엄마를 크게 불러 보겠는데, 소리도 목에서 새어 나오질 않았다. 나는 한껏 웅크린 자세로 목을 쥐고는 토할 것이 있는데도 토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뒹굴었다. 135번은 이런 나를 보고는 놀라서 교도관을 불렀다.
덩치 큰 오교도관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더니, 망설일 틈도 없이 나를 둘러업고 복도를 내달렸다. 박교도관도 뒤이어 달려오면서 내 이름을 계속 불렀다. 그런데 교도소 안에 싱그러운 바람이라고는 한 자락도 없는데 가느다란 관이 목에 삽입되어 산소를 공급받는 것처럼 아주 미세하게 호흡을 할 수 있었다. 의무실에 도착해서 교도관은 나를 내려 눕히고는 의사에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갑자기 호흡을 하기 힘들어했고, 지금은 그때와는 조금 달리 숨을 쉴 수 있는 것 같다고.
의사는 나를 진찰하고는 몇 가지를 물었다.
"이런 증상이 처음인가요?".
"아니요. 이곳에 온 이후, 가끔씩 밤에 잠을 자려고 하면 목을 꽉 조여 오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나는 아주 가느다랗게 말했다.
"그럴 땐, 주로 어떤 생각이 들 때인가요?"
나는 가만히 의무실 천장이며, 벽을 눈동자로 돌려가면서 둘러봤다.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에너지가 필요한 일인지 깨달았다.
"이곳을 못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거나 갑자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요. 그러면 이곳이 너무 갑갑하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창살이 내 심장에 박혀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
의사는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면서도 따뜻한 말투로 말했다.
"이런 증상이 요즘 더 심해졌나요?"
"맞아요. 요즘은 더 자주 그래요. 아무렇지도 않았다가 갑자기 아침에 잠이 깨었을 때도 이런 불안감이 한꺼번에 몰려와요. 그리고 그 불안감을 느낀 이후에 더 극심한 공포심이 몰려오는 것 같아요."
"알겠어요. 자세히 말해줘서 고마워요."
의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이제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다며, 주기적으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죽음의 문턱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처럼 눈동자가 풀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이틀 후에 오교도관이 나를 불렀다.
"673번 나와."
나는 아무런 기대 없이 몸을 세워 나갔고, 궁금한 내색 없이 오교도관을 따라 걸었다.
상담실이라는 푯말이 적혀 있었고, 오교도관이 멈춰 서서 살짝 노크를 하고는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틈 사이로 이상하게 좋은 향기가 났다. 이제까지 내게 이 세상은 한 번도 좋은 향기를 내어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교도관은 들어가라고 턱을 살짝 들어 올려 신호를 줬고, 나는 상담실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