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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18. 2022

소통, 못해서 잘하고 싶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55일째 

8월 18일(수) 더운 맑음 


사람이 언어가 다르면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같은 언어라도 살아온 배경, 가정환경, 누적된 경험, 성격, 가치관 등에 의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는 대화가 있다. 부부가 살다 이혼하는 이유 1위에 '성격 차이'가 많이 꼽히곤 한다. 그렇지만 이건 너무 성의 없는 결론이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더 내밀한 이유가 존재한다. 내 경우, 결혼생활에서 가장 큰 다툼의 원인은 '소통'이다. 내가 건네는 말, 상대방이 내뱉는 말의 의도가 서로에게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도 결혼 생활에 통해 배우게 됐다. 


한국어로 말하는데, 소통이 왜 불통이 될까? 모든 말에는 직접 메시지와 간접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숨은 의도가 있는 말일 수록 입장 차이가 발생한다. '원하는 걸 말하라.' 우리 부부가 몇 번 서로에게 강조했던 말이다. 질문형으로 묻지 말고, 그냥 내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걸 말하는 거다. "점심 뭐 먹고 싶어?" 질문하는 것보다 "난 점심 이렇게 하면 좋겠는데 네 생각은 어때?"라고 더 분명하게 나의 니즈를 표현하는 게 낫다. 


내재된 불안과 기대도 큰 이유다. 대화를 하다가 급발진하거나, 하는 걸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서로 알지 못하는 불안과 기대를 마음속에 품고, 그 상황에 맞춰서 내가 뜻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갑작스레 화나 짜증을 버럭 내게 되는 것이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지금 상황에서 내가 걱정하는 이슈가 무엇이기 때문에 당신이 무얼 해주면 좋겠다'라고 나의 불안에 따른 상대방에 행동에 대한 기대치를 더 자세히 표현한다면 '내가 or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를 알아내는 미궁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불통'은 비단 부부 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첫째와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지만 첫째가 마치 말을 못 하는 아기인 것처럼 무작정 떼를 쓸 때가 있다. 갑작스레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울음, 짜증 등 부정적인 감정으로 불명확한 의사표현을 한다. 특히 우리처럼 예민한 성향의 부모와 아이라면 부부간, 부모 자식 간의 소통에 내재된 불안과 기대로 인한 부정적 감정표현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감정표현에 미숙하고, 남편도 그런 편이다 보니 첫째가 자기표현에 익숙하지 못한 건 당연한 결과인 것도 같다. 등원하거나, 놀이터에서 놀 때나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일 때 원하는 바, 불편한 바를 제대로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잉잉거리거나 엎드려 고개를 숙이거나, 짜증을 내는 상황이 종종 있다. 오늘은 다행히 심하게 첫째의 심기를 건드리는 상황은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언제 터질지 모르겠는 불안감을 갖고 아이를 케어하는 게 나로선 큰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어떻게 건강한 자기 의사표현, 감정표현을 하도록 도와줘야 할지 (물론 나부터 잘해야 하지만) 고민이 됐다. 


그러던 마침 유튜브에서 '감정 발달'을 주제로 한 오은영 박사님의 강의를 보았다. 감정을 느낀다면 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감정을 잘 다룬다면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냥 "짜증 나. 스트레스받아"라고밖에 감정을 표현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런 짜증, 스트레스라는 감정에 기분 나쁨, 속상함, 슬픔, 화남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담 이 감정들을 자세하게 세분화하지 않고 "짜증나", "스트레스 받아"라고만 표현하고 그 감정을 폭식이나 음주 등으로 처리하면 안 된다는 거다. 불안, 슬픔, 분노 등을 각자의 감정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배가 고파도 화내고 슬퍼도 화내는 건 감정 발달이 안된다는 거다. 그런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 표현에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고 한다. 


각각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기. 그리고 그걸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당연한 말 같지만 나와 우리 가족을 이해하는 데 명쾌한 해답이 되었다. 난 이 강의를 보며 나와 우리 남편, 그리고 첫째 아이가 떠올랐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감정 발달은 선천적이지 않고 후천적인 것이라 성인이 된 후에도 감정 발달을 연습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나 아이들은 모든 감정을 다 낯설게 느끼고 그 감정의 형체를 명확히 모르니, 그걸 인지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게 필요하겠다 싶었다. 물론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니, 나 먼저 내 감정 발달을 위해 더 연습해야겠다. 하지만 이 자체로 큰 도전이다. 우리 가족 간의 소통 문제나 첫째의 감정 발달은 나 혼자 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고, 현실 인식과 문제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개인차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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