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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19. 2022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한 노오력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57일째

8월 19일 금요일 갑자기 폭우


오늘은 첫째가 수영장에 가는 금요일이다. 공교롭게도 일부러 일정을 맞춘 것은 아니지만 나도 얼마 전부터 수영을 시작했고 오늘 오전에도 갔다 왔다. 이렇게 나도 자유형 기본부터 배우고 있는지라 첫째와 공감대가 하나 더 늘었다. 아빠도 오늘 자유형 발차기 연습을 해서 힘들다고 하면서 다리를 주물러 주니 좋아한다.


군대에서 배운 것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생에 깊게 새긴 교훈이 있다. 신병교육대 중대장이 강조했던 삶의 태도인데, 바로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는 것'과 '누가 나한테 해서 싫었던 것은 나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복잡한 말 같지만 4글자로 요약하면 이게 바로 '역지사지'다. 비록 철저하게 지키지는 못했지만 군 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항상 이것을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이는 자녀를 대함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내가 어릴 때 하기 싫었던 것은 (그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거나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가 아니라면) 자녀들에게도 강요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우리 아버지에게 자라오면서 겪었던 서운함들을 상기하며 그와 같은 행동을 자녀들에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엄한 분이었지만 나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한 것도 같은 이유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려면 상당한 노오력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취향과 공감대라고 생각한다. 친구란 취향이 비슷하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대화가 잘 통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면 즐거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단 제일 먼저 많이 해오고 있는 것은 '습관적 노출', 나쁘게 말하면 '세뇌 교육'이다. 나는 비교적 음악이나 영화나 콘텐츠를 즐기는 범위가 넓은 편이다. 예를 들어 음악은 국내 일반 가요나 힙합, 밴드 음악부터 팝과 클래식, 영화음악, 월드뮤직 등 꽤나 다양한 곡이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있다. 그래도 그중에서 인생 곡이나 요즘 듣는 '최애'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 노래들은 나 혼자 듣지 않고 첫째와 항상 같이 들어왔다. 차에서도 틀어놓고, 집에서도 블루투스 스피커로 자주 노래를 듣는다. 이게 효과가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첫째가 어느 정도 노래와 음악을 인지하고 호불호를 가릴 수 있을 때쯤부터 본인이 듣기 좋은 노래를 저장해달라고 하는 플레이리스트가 생겼는데, 이 리스트에 들어가는 노래 취향은 나랑 놀랍게도 상당히 비슷하다. 심지어 랜덤으로 나오는 노래 중에 '오 이 노래 좋은데?' 하고 생각하는 찰나에 갑자기 첫째가 자기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달라고 말할 정도다. 가장 최근에 이렇게 취향이 일치했던 곡은 Nathan Evans의 Wellerman이었다.


이와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야구도 자주 노출하는 중이다. 예전 일기들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나는 꽤나 오래된 LG트윈스 팬이다. 평소에는 중계를 에어팟 한쪽에 꼽고 듣다가 중요한 장면이 되면 가끔 화면으로 보는 식으로 거의 전 경기를 챙겨본다. 그리고 주말 낮 경기나 중요한 경기는 TV로 틀어놓기도 하니까 첫째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 사실 이미 한참 전에 유니폼은 사주었고, 나 혼자 데리고 야구장에 간 적도 있다. 물론 아직 야구 규칙은 모르고 그냥 공을 던지면 치는 거라는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LG 선수들 응원가를 흥얼거리고 있는 걸 보면 이미 LG를 우리 편이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사실 다 필요 없이 같은 팀 팬이 되는 것만 성공해도 친구 같은 아빠 되기 미션은 반쯤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일방적으로 내 취향을 강제 학습시키는 것만이 노오력의 전부는 아니다. 나도 반대로 첫째가 좋아하는 만화들을 내용까지 알기 위해 같이 본다. 만화 틀어주고 그 시간에 다른 걸 할 때도 많지만, 일단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니까 등장인물과 내용도 숙지해두어야만 나중에 대화 소재도 생기고 더 잘 놀아줄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 친구들이나 유치원 생활도 최대한 알아두려고 한다. 일단 같은 반 친구 24명의 이름까지 다 외웠고, 놀이터에서 같이 노는 친구들도 다 알고 있다. 유치원 시간표나 식단표 같은 것도 자주 본다. 유치원 생활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으면 꽤 자세한 대화도 나눌 수가 있다. 옛날 아빠들은 대화를 하겠답시고 "오늘 유치원에서 뭐 배웠어?"라고 겉핥기 식으로 물어보니 당연히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오은영 박사님이 친구 같은 아빠라도 아빠는 아빠여야지 친구는 아니라고 했다. 아빠를 때린다거나 선을 넘는 행동은 올바로 훈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를 혼내거나 엄하게 꾸짖어야만 하는 순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사춘기를 거치더라도 나를 '꼰대'라고 부르지는 않게 만들고 싶다. 일단 나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다.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는 아빠가 될 것이다. 남자의 세계에서 친구란 '같이 게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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