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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21. 2022

공동육아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58일째

8월 20일(토) 늦여름이 발악하는 듯한 더위


이제 신생아는 벗어났지만 아직 둘째는 외출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 가족에게 주말 계획 따위는 없다. 다만 오늘은 누가 첫째와 외출할 것이냐는 옵션만 남아있다. 어제 하루 종일 집에 있었던 내가 오늘은 첫째와 외출 담당이다.


첫째의 영어 놀이센터에서 첫째 여사친의 엄마에게 오후 계획을 물었다. 상황상 5살 첫째와 2살 둘째를 혼자 케어해야 한다는 그녀의 소식에 나는 내심 반가웠다.


"그럼 우리 함께할까요?"


나의 제안으로 우리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져 있는 영어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첫째는 반납할 책이 있었다. 내 계획은 이랬다. 영어도서관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책을 본 뒤 옆 상가의 빵집에 가서 음료수 먹고, 근처 놀이터에서 실컷 놀다 편하게 집에 올 생각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공동육아는 시작되었다. 우선 우린 점심을 먹어야 했다. 메뉴는 두 아이 모두 좋아하고 우리가 다 같이 식당에서 먹은 적 있는 고구마 돈가스다. 실패한 적 없는 메뉴고 오늘도 성공이었다. 맛있는 점심 식사 후, 첫째 친구네 집에서 다 같이 평화롭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니 꼭 밖에 나가야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가볍게 외출을 하기로 했다. 애들은 에너지를 빼놔야 잘 자니까!


우리들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하필 왜? 도서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공사 중이었다. 도서관은 4층이라 올라갈만했지만, 2살 아기를 대동해 4층까지 걸어 올라온 친구 엄마에게 많이 미안했다. 하지만 우린 잘 도착했고, 애들을 들여보내며 시원한 도서관에 들어갔다.


첫째는 자주 오던 곳이라 익숙했고, 늘 그렇듯 앉아서 책을 보고 싶어 했지만 첫째 친구와 동생은 낯선 도서관이 재미없는지 계속 돌아다니며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하고 싶어 했다. 나는 왜 애들이 도서관에 오면 앉아서 책을 볼 거라 생각했을까? 결국 5살 아동 두 명과 2살 영아 한 명은 도서관에서 여러 번의 주의를 받고 입장한 지 10분 만에 밖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첫 번째 계획은 틀어졌다. 괜찮아, 빵집 가서 애들 음료수랑 아이스크림 먹이면 되겠지. 내가 예전에 가봤던 상가 1층에는 넓은 파리바게트가 있으니까. 하지만 상가까지 걸어가는 길에 첫째 친구는 아스팔트 길에서 꽤 세게 넘어졌고 통곡을 했다. 첫째 친구 엄마는 아이를 잘 달래주었다.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이것도 잘 참아서 장하다고, 이것도 다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위로를 했다.


아 내가 이 말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예전에 비가 쏟아지던 날 애들과 우리가 비를 맞으며 걸어 다닐 때에도 했던 말이다. 추억 만들다 다 같이 골병이 들 것 같지만, 어쨌든 겨우 애들을 추슬러 상가에 왔지만 내가 알던 빵집이 리모델링을 했는지 애 셋, 어른 둘이 다 함께 앉을 곳은 없었다. 애들은 힘들고 배고프고 덥다고 징징댔다.


우리는 급히 근처 지하철 역 상가의 베스킨라빈스에 들어갔다. 시원한 곳에 들어가니 아이들은 더 이상 보채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이 늦게 나와도 그냥 가만히 앉아 미니언즈가 그려진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기대하던 아이스크림도 나왔고 애들은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먹고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비록 둘째 아이를 먹이다가 친구 엄마의 검은색 원피스에 하얀 밀크셰이크가 줄줄 흐르긴 했지만... 괜찮아 이것도 다 좋은 추억이 될 거야.


물티슈로 닦은 원피스에 셰이크 자국이 없어지진 않았지만 우리는 땀을 식히고 근처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불운은 이어졌다. 안전 검사 결과 부적격 받은 놀이터를 본 적이 있는가? 난 있다. 태어나서 오늘 처음으로 안전검사 결과 부적격 판정을 받은 놀이터를 보았다. 그것도 두 개나... 우리가 찾아간 놀이터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흡사 미라처럼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놀이터 폐쇄에 망연자실한 건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인 우리였다.


아, 망했다. 오늘은 망했구나. 난 모두를 끌고 여기까지 온 나 자신이 싫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뭐가 좋은지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알아서 재미있게 놀았다. 친구가 있어 행복한 첫째를 보며 난 다시 택시를 불렀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동네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갔다. 5살짜리 두 명도 그렇지만 2살짜리까지 정말 찐 웃음을 지으며 달려가는 걸 보고 허탈했다. 비록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더위를 느끼고 좌절을 느꼈지만 비 오는 날 고생했던 그때처럼 오늘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다만 우리는 약속했다. 앞으로의 공동육아에선 추억 말고 그냥 평범한 하루를 만들어보자고. 그러나 아이들은 함께하는 것만으로 신나 했다. 택시 타고 돌아다니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폐쇄된 놀이터를 놔두고 아파트 화단을 걸어 다니며, 돌아온 동네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며. 첫째는 신나게 놀았고, 일찍 곯아떨어졌다.


역시 공동육아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하지만 다음엔 더 이상 추억을 만들고 싶진 않다. ㅎㅎㅎ 그냥 기억조차 나지 않을 평범한 하루를 다 함께 만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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